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2008. 12. 26. 오전 5: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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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입니다. 제게 있어서 스테파노라는 이름은 김수환 추기경님 때문에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은 제 어린 시절부터 기둥이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교리경시대회를 하면 제일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주는 상이 있었는데 그 상의 이름이 추기경님께서 주시는 상이었습니다. 저는 받지 못했지만 제 친구가 받았는데, 그때 받은 상이 녹음기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상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일 년에 한번 정도 신학교를 방문하셔서 미사를 함께하시고 식사도 하셨습니다. 저는 추기경님의 방문이 너무 좋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신학생들이 추기경님을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임쓰신 가시관’이라는 노래를 불러드렸는데, 추기경님께서 참 좋아하셨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신학생 대표는 추기경님께 'Vacatio'(휴가)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면 추기경님께서는 이틀 정도 휴가를 주셨습니다. 아무리 엄한 학장신부님께서도 추기경님의 말씀을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추기경님에 대해서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논문을 쓰면서 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 하셨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 계시던 명동성당은 외롭고, 고난 받는 사람들의 쉼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찾아갔고, 추기경님께서는 그런 분들을 넓은 가슴으로 맞아 주셨습니다. 경찰에 쫓기던 노동자, 대학생들은 명동으로 갔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정말 많은 성당들이 ‘예비자 교리’ 때문에 바빴습니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 성당을 찾았던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추기경님께서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골의 작은 성당의 본당신부였을 때, 추기경님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시골 본당에 ‘대림특강’을 부탁드렸습니다. 편지를 드렸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시골의 작은 성당이었기 때문에 저의 부탁을 들어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본당에 오셔서 대림특강과 미사를 해 주셨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마 제가 큰 본당의 신부였다면 추기경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추기경님께서는 가난한 곳, 어려운 곳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셨습니다.

오늘은 ‘스테파노 순교자’축일입니다.
어제는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다음날이 바로 우리교회의 첫 순교자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신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박해와 순교를 당할 수도 있지만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따르는 삶입니다.

이제 연로하셔서 투병 중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우리 시대에 희망과 사랑을 보여주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댓글 3

  • 2008년 12월 26일 오전 8:52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스테파노 성인이시여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빠른 쾌유를 하시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아멘!

  • 2008년 12월 26일 오전 10:20

    어려웠던시절 억울한 많은 젊은이들을 살리신 추기경님을 위하여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아 멘"

  • 2008년 12월 26일 오후 10:3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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