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크카나마 알아철리 구수은’ 학교에 다닐 때 외우던 원소기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원소기호를 앞글자만 따서 외웠는데, 시험 때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보니, 그땐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나 봅니다. 또 무조건 외우던 것이 있습니다. ‘태종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 철고순’ 조선 27대 왕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앞의 이름만 따서 외우면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외울 이유가 없지만, 학생 때는 외워야 하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영어공부를 참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외국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면 힘들어합니다. 자리를 피하기도 하고, 입에서는 맴도는데 말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영어공부를 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영어공부에 조금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말하기, 쓰기, 듣기, 문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중에서 말하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성당에 다녔는데도 여전히 세상에 미련이 많고 욕심과 갈등이 많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위기에 닥친 두 사람의 신자 중 한 사람은 차분하게 기도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절망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합니다. 두 사람의 행동이 왜 이다지 다를까. 인간에게는 겉마음(의식)과 속마음(무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속마음에 신앙이 자리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속마음에 신앙이 자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서 속마음 깊숙이 형성되는 것이라서 평소에는 잘 관찰되지 않습니다.
종교학자들은 속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신앙심을 신앙체제라고 합니다. 신앙체제는 속마음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까닭에 좀처럼 표면에 떠오르지 않지만, 당사자의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시때때로 드러나며,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불교는 신앙체제를 속제와 진제로 구분하지만, 가톨릭은 청원태, 희구태, 제주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청원태는 원하는 것을 청하는 것을 주로 하는 신앙심을 뜻합니다. 삶에는 해결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 항상 발생합니다. ‘펀드나 주식 값이 내린다. 먹고 살 길이 막연하다. 남편이 아프다. 아이가 수능을 본다. 이를 위해서 하느님께 매달린다.’ 은연중에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랍니다.
희구태는 경전에 나오는 이상에 따라 살고자 할 때, 형성되는 신앙심을 뜻합니다. 성경의 이상대로 사는 것은 힘들지만, 그렇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데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사람이 갖는 신앙심입니다. 이 단계에 와서 비로소 속마음 속에 종교적 가치체제가 편성됩니다.
제주태는 경전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이 갖는 신앙심입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해명하고자 노력해 온 것이 바로 이러한 궁극적인 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체험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세상에 미련과 욕심이 많다면, 공동체에 대한 문제보다 자기 개인적인 문제로 항상 고민하고 있다면, 마음이 편치 않고 뒤틀려 있다면, 세상을 원망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이 송곳 끝처럼 좁아진다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무엇을 해결해달라고 주로 기도했을 뿐,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는 노력을 등한시 한 데 있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원소기호를 외우는 것은 화학공부를 위한 기초였습니다. 또 제가 조선왕 왕조 순서를 외우는 것도 역사 공부를 위한 기초였습니다. 그 너머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바로 시작입니다. 우리는 그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셨는지,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