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 월요일에 代洗를 주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집에 계신 할아버지인데 하느님을 믿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교리를 모르기 때문에 대세를 드리고 방문교리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알았다고 하시면서 대세를 받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세례명은 요셉으로 정했습니다. 오늘 방문교리를 하시는 구역장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시기 때문에 성탄 전에 補禮를 주셔도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구역장님의 말씀을 듣고 연로하신 어르신께서 몸이 쇠약해서 집에만 계셔야 하는 어르신께서 보례를 받아도 되리라 생각을 하고 토요일에 보례를 주기로 했습니다. 마침 토요일은 본당에도 세례식이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칙대로 하면 매 주일 성당에 나와서 예비자 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주일 미사도 참례해야 합니다. 묵주기도도 배워야 하고, 기도문도 외워야 합니다. 예비자들을 위한 성지순례도 가야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픈 분에게는, 하느님을 믿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분들께는 세례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필립보 사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습니까?’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립보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립보는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사도 8, 37-38) 필립보는 길을 가다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혼인 전에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서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고 파혼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에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서 처녀인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성령의 뜻대로 된 것이란 이야길 듣습니다.
요셉은 이제 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래서 임신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요셉이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것처럼 우리는 이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고 하느님을 체험한 우리의 삶은 변화되는데 이것을 회심 또는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회심, 영성으로 살면 우리의 삶은 이제 감성적, 이성적, 윤리적, 행동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운전에도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준법운전입니다. 이것만 잘해도 사고를 예방하고, 사람들에게 운전을 잘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안전운전입니다. 법규를 지키는 것은 물론, 앞에 가는 차량 3대 정도는 파악을 합니다. 뒤에서 오는 차량도 파악을 해서 난폭한 운전을 하는 차량 가까이는 가지 않는 운전입니다. 이정도면 거의 평생 무사고 운전을 할 수 있고, 운전에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양보운전입니다. 안전운전을 넘어서서 바쁜 사람에게 먼저 길을 양보하기도 하고, 짐을 든 노인들은 차를 세워서 모셔다 드리고, 고장 난 차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주는 운전입니다. 이런 양보운전은 운전의 최고 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존경하는 것은 예수님을 기르고, 돌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의 삶의 기준은 법대로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임마누엘’ 바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내 삶의 기준이 ‘하느님의 뜻’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