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봉성체가 있었습니다. 가장 어린 친구는 이제 중학교 2학년입니다. 어린 학생이 몸이 아파서 병원엘 가야 했습니다. 엄마의 간절한 소망은 아이가 빨리 치유되어 다른 학생들처럼 뛰어놀고, 환하게 웃은 것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92살의 할머니이십니다. 말하고 듣는 것은 다 하시지만, 이제 나이가 많으셔서 성당에 오시지는 못하십니다. 기도문을 열심히 따라하시는 할머니께서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가장 오래 아픈 분은 17년 동안 방에만 계시는 할아버지이십니다. 할머니의 소망은 할아버지께서 제대로 걸어서 문밖을 나서는 것입니다. 중학생 다음으로 젊으신 분은 이제 60이 조금 넘은 자매님이십니다. 3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지금은 말씀도 하시고, 식사도 잘 하십니다. 아내를 돌보는 형제님은 아직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봉성체를 가는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전처럼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봉성체를 하면서 어르신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해갔습니다. ‘율리안나, 안나, 가밀라, 요셉, 가시미로, 카타리나, 마리아, 엘리사벳, 아네스, 베드로, 이번에 새로 봉성체를 시작한 마리아’ 어르신들이 새해에는 좀 더 건강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간호하고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이 그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어머니도 올해 5번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아버님은 한 번도 병원에 입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니를 위해서 밥도 하시고, 반찬도 만들고, 빨래도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보셔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난주에 아버님께서 텔레비전을 하나 더 사달라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사드렸습니다. 올해는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아프지도 않으셨고, 아픈 어머니를 잘 돌보아 드렸기 때문입니다. 내년에 두 분 모두 건강하셔서 병원엘 가지 않으시면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들지 않는 꽃은 없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시들고, 아프며 언젠가는 떨어지는 낙엽처럼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건강하게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어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아프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고치기 힘든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육체가 건강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가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가정방문을 다니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완벽한 가정, 아무런 문제나 고통이 없는 가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께서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데, 이렇게 많은 절망이 있는데, 이렇게 많은 불의와 폭력이 있는데,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저는 잠시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저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저 불의와 폭력의 희생자들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있었고, 죄인들과 함께 있었고, 병들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그분 역시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불의와 폭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놀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심판하시는 하느님께서 무력하게,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고통과 절망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갈등과 번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가장 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셨던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며, 사랑하셨던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들은 꽃처럼, 떨어지는 낙엽처럼 허망할 것 같은 우리의 삶은 바로 이런 예수님의 삶을 따라갈 때, 십자가를 넘어, 죽음을 넘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