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람이란 참 이상합니다. 어제는 강론 때, 아버님 생각이 나는 겁니다. 늘 곁에 계셨는데, 어느새 노인이 되신 아버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미사 중에 코끝이 찡한 것이 감기기운인 줄 알았는데, 눈물이더군요. 본의 아니게, 미사참례를 오신 분들에게 분심을 드렸습니다.
오늘 신학교에 학생들 면담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4명의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이 이렇게 이야길 합니다. ‘학교생활도, 공부도, 기도도 다 할 수 있는데 사람이 미운 것은 너무 힘이 듭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아무리 힘든 일들도 결국은 사람이 다 자기하기 나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라의 경기도 어려워지고, ‘쌀 직불금’ 때문에 공직자들의 신뢰가 떨어지는 요즘에 ‘따뜻한 사람, 의로운 사람, 진실한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추워지는 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듯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큰 나무와 같이 늘 피난처가 되어주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1797년 황해도 곡산이라는 오지의 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다산을 총애하던 정조가 이런 오지에 다산을 보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곡산은 소요지역이었습니다. 곡산의 전임 부사가 군포를 1년 사이에 4배 이상으로 올리는 바람에 농민들의 허리가 휠 지경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세금에 항의하는 1000여명의 주민들이 관아에 몰려가 대규모 소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주동자는 이계심(李啓心)이라는 농민이었습니다. 관에서 이계심의 체포령을 내리고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었으나 주민들이 기꺼이 이계심을 숨겨주므로 행적이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다산이 임명장을 받자 주위의 고관들이 모두 이계심을 잡아들여 사형시켜야 한다고 열을 올렸습니다. 다산의 부임행차가 곡산에 들어섰을 때 웬 사나이가 갑자기 행차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바로 이계심이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괴롭히는 12가지 병폐에 대한 호소문을 신임 부사에게 전달하려고 투옥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당장 체포하라고 성화였으나 다산은 오랏줄로 묶는 대신 그냥 따라 오라고 했습니다.
관아에 도착한 다산은 호소문을 찬찬히 읽어본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고을에 모름지기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 형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백성을 위해 그들의 어려움을 대신 호소했구나. 천금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 같은 사람은 얻기 어렵다.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하겠다.”
박 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란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좋은 세상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진실한 사람,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에 세상에 평화가 없고, 분열과 불신이 가득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만이 희망’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따뜻함이, 우리들의 진실함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지치고 힘든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시오. 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