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성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시인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빛이 되고 싶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저는 시인의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이름을 정하고,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식물들도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의미를 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이름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세례를 받으면서 받은 이름입니다. 저는 두 개의 이름을 스스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름들을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세상의 이름은 ‘재형’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고,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중용’을 지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의 이름의 의미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입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또한 제게는 소중한 이름입니다. 사제의 길을 가는 제게는 가장 적합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라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카리야와 엘리사벳은 아들의 이름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요한’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운 분’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이름의 뜻대로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면서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 부모님께서 정해주신 나의 이름의 의미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세례명이 가지는 뜻을 생각하면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