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들의 상식과 우리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어릴 때 바라보았던 학교의 운동장은 참 크고 넓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학교의 운동장을 보면 어릴 때 그렇게 커 보였던 운동장이 사실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엄청나고, 큰일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그런 일들도 쉽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늘의 별, 그 별들이 노니는 우주를 생각해 봅니다. 그 무엇이 있어서 저 광대한 우주를 놀이터 삼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눈은 그 어떤 카메라보다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손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 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손을 만들 수 있는 분은 또 누구일까요? 흘러가는 구름, 겨울지나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는 꽃들, 흘러가는 저 강물을 봅니다. 수천, 수만 년을 흘렀어도 마르지 않고 흘러가는 저 강물은 누가 흘려보내는 것일까요?
시흥5동 본당을 생각합니다. 전 신자들이 도보 성지순례를 다녀왔고, 천수만으로 가족캠프를 다녀왔고, 베론 성지로 기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많은 본당의 행사에 언제나 좋은 날씨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본당의 모든 행사가 잘 치러질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게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소성전을 나누어서 도서실과 상담실을 만들었습니다. 성당 입구 정화조를 꾸며서 아름다운 정원이 되게 했습니다. 물품 판매를 하는 모니카 회를 위해서 아담한 매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지만 감히 할 수 없었던 ‘성모동산’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저의 능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지난 주 대림 특강을 해 주신 김길수 교수님께서는 원 베드로 순교자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베드로 순교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존경하게 되었고, 저의 부족한 신앙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고을의 사또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도 예수를 안다. 그 사람은 장군도 왕도 아니었다. 큰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 아닌가!’ 이때 베드로 순교자가 말을 합니다. ‘그 누가 있어서 모든 자신의 권능과 능력을 버리고 비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누가 있어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습니까! 하나라의 우왕을 우리는 성왕이라고 칭송합니다. 그것은 우왕이 백성들을 위해서 기꺼이 낮은 자세로 임하였고, 백성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또에게도 당당하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던 베드로 순교자였습니다. 과연 나는 그렇게 당당하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사또는 원 베드로 순교자가 당당하게 말을 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살려 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좋다! 형식적으로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여라.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 까지는 탓하지 않겠다. 그러면 바로 살려 주도록 하겠다.’ 그러자 베드로 순교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또는 누가 살려 준다고 하면 형식적으로라도 임금이 없다고 말을 하겠습니까! 내가 어찌 내 한 목숨을 살리자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형식적으로라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정말 많은 경우에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잠시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라도 내가 신앙인임을 드러내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원 베드로 순교자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 쓴물을 마셨는데 나는 그래도 감옥에서 동료들에게 단물을 얻어 마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너무나 큰 은총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이 고통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저는 원 베드로 순교자의 이 말을 들으면서 울컥했습니다. 작은 불편과 고통 앞에서 나는 많은 불평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들을 만든 사람들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너무나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엘리사벳과 삼손의 어머니는 잉태하였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셨고, 하느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과 삼손의 어머니는 현실의 삶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은총은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고, 현명한 판단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세상의 것들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