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의정부에 계시는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서울 삼성병원에 친척 어르신이 입원해 있으니 ‘병자성사’를 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도 아니고, 어머니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서 삼성병원에 가서 병자성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오래전에 만났던 친지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사실 그날 저녁에 사목회의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병원엘 먼저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가끔씩 제게 부탁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대녀의 딸이 혼인을 하는데 주례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대녀도 잘 모르고, 대녀의 딸은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혼인의 주례를 서기 위해서는 혼인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대부분의 혼인은 토요일 오후에 있기 때문에 저도 일정을 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청은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와주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건강하신 것만도 감사를 드리며 가능한 것들은 모두 들어 드리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께 부탁을 하셨습니다. 성모님의 부탁은 저의 어머니의 부탁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머니의 부탁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탁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하느님께 청하면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입니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가슴과 가슴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따뜻한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그런 따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기다리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청년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사고의 결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지내던 청년이었습니다. 죽음까지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청년이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장애인 스키선수로 출전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뒤로 청년은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하고, 스키연습을 하였습니다. 의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차고 다니는 청년에게 장애는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약간 불편할 뿐이었습니다. 너무나 당당하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그 청년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뇌성마비 아가씨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날 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가씨는 손을 사용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을 발로 하였습니다. 아가씨는 발로 글로 쓰고, 발가락을 사용하여 목걸이, 팔찌, 묵주를 만들었습니다. 불편한 몸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아가씨는 아가씨를 가르치던 야학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청년은 아가씨의 발가락에 청원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함께 살 것을 청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결혼은 양쪽 집안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정상인인 청년의 집안에서는 ‘무엇이 부족해서 장애인과 결혼하느냐’였습니다. 아가씨의 집안에서는 ‘언젠가 청년이 떠날지 모르는데 그 때 받을 상처는 어찌하겠느냐’였습니다. 사람들은 뇌성마비 아가씨를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부자인가 보죠!’ 장애인이 정상인과 결혼하는 것을 보니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장애인 딸을 결혼식장에 데리고 나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딸, 평생 혼자 살아야 할 줄 알았던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당당하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배우자를 선택하였던 순수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더 예쁘고, 더 잘생기고, 더 잘 사는 사람들만이 축복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에게 축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장애는 잠시 불편할 뿐이지, 결코 불행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볼 줄 아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경쟁과 순위를 행복의 척도로 보지 않고 나눔과 희생을 행복의 척도로 보는 사람들!
우리는 묵주기도를 할 때 십자가에 친구(親口)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 고상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십자가의 친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친구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친구하는 것은 성모님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이의 몸을 보는 것은 유족들에게 속한 일입니다. 죽은 이의 몸에 입을 맞추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매달려서 죽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십자가에 친구를 한다는 것은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친구한다는 것은 성모님처럼 순명의 삶을 인내의 삶을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걱정과 근심 중에 있다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심대로 산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입을 맞추지 않고 묵주기도를 해도 무방합니다. 십자가에 입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모님처럼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성모님처럼 순수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의정부에 계시는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서울 삼성병원에 친척 어르신이 입원해 있으니 ‘병자성사’를 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도 아니고, 어머니의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서 삼성병원에 가서 병자성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오래전에 만났던 친지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사실 그날 저녁에 사목회의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병원엘 먼저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가끔씩 제게 부탁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대녀의 딸이 혼인을 하는데 주례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대녀도 잘 모르고, 대녀의 딸은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혼인의 주례를 서기 위해서는 혼인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대부분의 혼인은 토요일 오후에 있기 때문에 저도 일정을 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청은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와주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건강하신 것만도 감사를 드리며 가능한 것들은 모두 들어 드리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께 부탁을 하셨습니다. 성모님의 부탁은 저의 어머니의 부탁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머니의 부탁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탁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하느님께 청하면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입니다. 사랑은 이성과 논리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가슴과 가슴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따뜻한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그런 따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기다리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청년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사고의 결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지내던 청년이었습니다. 죽음까지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청년이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장애인 스키선수로 출전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뒤로 청년은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하고, 스키연습을 하였습니다. 의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차고 다니는 청년에게 장애는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약간 불편할 뿐이었습니다. 너무나 당당하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그 청년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뇌성마비 아가씨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날 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가씨는 손을 사용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을 발로 하였습니다. 아가씨는 발로 글로 쓰고, 발가락을 사용하여 목걸이, 팔찌, 묵주를 만들었습니다. 불편한 몸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아가씨는 아가씨를 가르치던 야학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청년은 아가씨의 발가락에 청원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함께 살 것을 청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결혼은 양쪽 집안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정상인인 청년의 집안에서는 ‘무엇이 부족해서 장애인과 결혼하느냐’였습니다. 아가씨의 집안에서는 ‘언젠가 청년이 떠날지 모르는데 그 때 받을 상처는 어찌하겠느냐’였습니다. 사람들은 뇌성마비 아가씨를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부자인가 보죠!’ 장애인이 정상인과 결혼하는 것을 보니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장애인 딸을 결혼식장에 데리고 나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딸, 평생 혼자 살아야 할 줄 알았던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당당하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배우자를 선택하였던 순수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더 예쁘고, 더 잘생기고, 더 잘 사는 사람들만이 축복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육신은 불편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에게 축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장애는 잠시 불편할 뿐이지, 결코 불행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볼 줄 아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경쟁과 순위를 행복의 척도로 보지 않고 나눔과 희생을 행복의 척도로 보는 사람들!
우리는 묵주기도를 할 때 십자가에 친구(親口)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 고상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십자가의 친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친구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친구하는 것은 성모님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이의 몸을 보는 것은 유족들에게 속한 일입니다. 죽은 이의 몸에 입을 맞추는 것은 아주 가까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매달려서 죽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십자가에 친구를 한다는 것은 성모님처럼 예수님과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친구한다는 것은 성모님처럼 순명의 삶을 인내의 삶을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걱정과 근심 중에 있다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심대로 산다면 우리는 십자가에 입을 맞추지 않고 묵주기도를 해도 무방합니다. 십자가에 입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모님처럼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성모님처럼 순수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