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안양 수리산으로 도보 성지순례를 왔습니다. 지금부터 4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시흥5동 성당에 온지 2주일도 안 되어서 절두산으로 도보성지순례를 함께 하였습니다. ‘본당의 날 행사’로 도보성지순례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순례를 마치고 구역장님들과 함께 본당에 돌아와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새벽미사시간에 맞추어서 성당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었습니다. 저는 순간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늦게 나와서 신자 분들이 모두 가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시계를 보니, 아직 밤 12시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긴장을 하였기 때문에 밤 12시를 새벽 6시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입니다.
요즘, 둘레길, 올레길과 같이 걷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성장하였고, 옆을 보고 바람을 느끼거나, 하늘을 보고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당장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뛰고 또 뛰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걷는 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처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건강을 생각하고, 마음의 평화를 생각하고, 잠시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둘레길, 올레길의 원조는 천주교회에서 하는 ‘도보 성지순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걷는 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성격과 의미는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서양에서 많은 신앙인들이 한번쯤은 하고 싶어 하는 길이 ‘야고보 성인’께서 걸어가셨다는 ‘샌디에고 콤포스텔라’입니다. 700킬로의 길을 순례하면서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서 걸었던 신앙의 길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순례의 길을 다녀왔고 책으로 느낌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도보성지순례가 지금부터 30년 전부터 생겼습니다. 저는 1982년도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해 여름에 모든 신학생들이 1주일간 도보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절두산, 미리내, 솔뫼, 해미, 나바위, 숲정이 성지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때는 더운 여름날 왜 이렇게 걸어야 하는지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목숨을 바쳐서 신앙을 지켜왔는지 순례 도중에 강의를 들었습니다. 신앙인들이 하는 도보성지순례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돌아보고,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신앙인이며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 묵상하면서 지난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 바로 도보성지순례의 참 의미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께서는 신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성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성인들은 우리들처럼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들 중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시흥5동 본당 공동체는 이제 설립 1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10월 8일에 성가대의 발표로 10주년을 함께 축하하였고, 우리는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을 선포하면서 본당 설립 10주년을 기도로써 봉헌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을 받아주시고, 은총으로 열매를 맺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당신 사랑의 표징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본당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성모동산을 새롭게 꾸미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구청의 힘을 통해서 토목공사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곧 토목공사가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모동산위에 우리들의 정성을 담아 아름다운 신앙의 동산을 만들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의 왕인 키루스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배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기준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나는 새도, 들판의 꽃도 하느님께서는 다 먹이고 입혀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먼저 하느님의 의와 하느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우리는 무엇이 황제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싶어 합니다. 황제의 것은 ‘거짓, 탐욕, 분노, 시기, 질투, 명예욕, 권력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우리들의 마음과 우리들의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하느님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눔, 희생, 봉사, 친절, 온유, 겸손’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우리들을 모두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는 이정표가 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받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를 위해서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각 구역별로 함께 준비해주신 구역장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간 자리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만 붙어 있어야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순례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머물다간 자리로 아름답게 해야 하겠습니다.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 본당의 날을 함께 축하하며, 함께 기도면서 순례의 길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둘레길, 올레길과 같이 걷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성장하였고, 옆을 보고 바람을 느끼거나, 하늘을 보고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당장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뛰고 또 뛰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걷는 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처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건강을 생각하고, 마음의 평화를 생각하고, 잠시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둘레길, 올레길의 원조는 천주교회에서 하는 ‘도보 성지순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걷는 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성격과 의미는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서양에서 많은 신앙인들이 한번쯤은 하고 싶어 하는 길이 ‘야고보 성인’께서 걸어가셨다는 ‘샌디에고 콤포스텔라’입니다. 700킬로의 길을 순례하면서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서 걸었던 신앙의 길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순례의 길을 다녀왔고 책으로 느낌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도보성지순례가 지금부터 30년 전부터 생겼습니다. 저는 1982년도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해 여름에 모든 신학생들이 1주일간 도보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절두산, 미리내, 솔뫼, 해미, 나바위, 숲정이 성지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때는 더운 여름날 왜 이렇게 걸어야 하는지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목숨을 바쳐서 신앙을 지켜왔는지 순례 도중에 강의를 들었습니다. 신앙인들이 하는 도보성지순례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돌아보고,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신앙인이며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 묵상하면서 지난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 바로 도보성지순례의 참 의미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께서는 신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성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성인들은 우리들처럼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들 중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시흥5동 본당 공동체는 이제 설립 1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10월 8일에 성가대의 발표로 10주년을 함께 축하하였고, 우리는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을 선포하면서 본당 설립 10주년을 기도로써 봉헌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을 받아주시고, 은총으로 열매를 맺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당신 사랑의 표징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본당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성모동산을 새롭게 꾸미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구청의 힘을 통해서 토목공사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곧 토목공사가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모동산위에 우리들의 정성을 담아 아름다운 신앙의 동산을 만들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의 왕인 키루스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배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기준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나는 새도, 들판의 꽃도 하느님께서는 다 먹이고 입혀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먼저 하느님의 의와 하느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우리는 무엇이 황제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싶어 합니다. 황제의 것은 ‘거짓, 탐욕, 분노, 시기, 질투, 명예욕, 권력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우리들의 마음과 우리들의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하느님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눔, 희생, 봉사, 친절, 온유, 겸손’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우리들을 모두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는 이정표가 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께 선택받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를 위해서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각 구역별로 함께 준비해주신 구역장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간 자리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만 붙어 있어야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순례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머물다간 자리로 아름답게 해야 하겠습니다.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 본당의 날을 함께 축하하며, 함께 기도면서 순례의 길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