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졸업해야 합니다. 가톨릭은 ‘서울, 인천, 수원, 대전, 광주, 부산, 대구’에 가톨릭 대학교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에만 있었고, 나중에 광주에도 생겼습니다. 그 뒤로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다른 지역에도 신학교가 생겼습니다. 사제직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신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배우고, 사제로서 영성을 배우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사제직에 오르게 됩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신학은 주로 유럽에서 시작된 신학입니다. 그 뿌리는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사상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작품인 성서를 근거로 성서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문명을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흘러가듯이 새로운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문명은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는 서양의 철학과 사상의 날개를 달고 유럽 문명을 이끌어 왔습니다. 유럽의 문명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미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국은 경제, 군사, 문화, 정치의 모든 분야에서 현대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은 또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의 도착지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라고 합니다. 아시아는 서양의 학문과 문화와는 다르게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왔습니다. 이제 인류의 문명은 아시아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이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양의 문명만으로는 동양의 문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중심주의, 개발과 성장 지상주의는 필연적으로 환경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독점과 부의 편중은 기아와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수많은 난민과 빈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의 터전을 빼앗았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오존층의 파괴는 우리가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흐르는 강물에 떠밀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참된 가치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노아가 홍수의 때를 대비해서 방주를 만들었듯이 우리는 변화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꾸준히 기도하고, 영적인 독서를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기쁨을 넘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에즈라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빌론에서 유배를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르시아 왕 키루스의 새로운 칙령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키루스 대왕은 유배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유배지에 있던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에즈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알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율법과 공동체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이제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다시는 유배당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일치와 단합을 이루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소경이 어둔 밤에 등불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보이지도 않는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소경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들고 다니는 등불을 보고 성한 사람들이 피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소경은 등불을 볼 수는 없지만 성한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고, 자신도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행의 등불을, 도움의 등불을, 봉사의 등불을, 사랑의 등불을 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지혜의 등불, 이성의 등불, 영성의 등불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나를 진리에로 이끌어 주고,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와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추석 때의 일입니다. 어머님과 형수님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아버님이 계신 비봉추모관을 다녀왔습니다. 2시가 넘어서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음식을 주문한지 40분이 넘었는데 나오질 않았습니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른 자리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직원이 실수로 그런 것이니 참고 음식을 먹자고 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계산만 하고 음식을 먹지 않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순간을 참고 음식을 먹었으면 어머니도 형수님도 마음이 편했을 텐데 저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배는 더 고프고, 어머니의 마음도 불편하게 해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반성을 하였습니다. 저는 사제이기 때문에 때로 먼저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제이기 때문에 많은 대접을 받고 지낸 적이 많았습니다. 사실 제가 대접을 받고, 제가 기다리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아내셨던 순교자들입니다. 신앙 때문에 목숨까지 바쳤던 순교자들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40분을 기다리지 못한 제가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부당하게 대접을 받았다고 화를 냈던 제가 더욱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예수님 앞에, 허기진 예수님 앞에 사탄은 달콤한 유혹을 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돌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보라는 유혹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40일을 단식하신 예수님께서 빵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하느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니 높은 데서 뛰어 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하느님과의 거래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느님과 거래가 아닙니다. 신앙은 온전하게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혹은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보여주면서 사탄에게 절을 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고 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재물의 유혹 앞에, 권세의 유혹 앞에 무릎을 끊게 됩니다. 사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사탄에게 찾아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를 찾아가서 시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그 시를 듣고 새롭게 시작되는 조선에 충성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새롭게 시작되는 왕조의 실세였던 이방원의 유혹은 참으로 달콤했습니다. 하지만 정몽주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는 자신의 신념과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이방원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 순교자들은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목숨을 바쳤던 정몽주처럼 주님을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치신 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고 있는 김대건 안드레아, 정 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바로 어두운 밤하늘에 아름답게 빛나는 신앙의 별들입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이역만리 머나먼 땅으로 유학을 떠난 김대건 신부님, 신부님을 모시기 위해 추운 겨울에 북경을 9번이나 왕복한 정 하상 바오로, 장원급제의 영광과 명예를 포기하고 기꺼이 고생길을 자처한 황사영, 그밖에 이름 모를 많은 순교자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에 쌓인 우리 교회에 희망을 주었고 빛을 주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8장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사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시련과 고통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떼어놓는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나의 욕심이, 나의 게으름이, 나의 자존심이, 나의 이기심이, 나의 교만이 그리스도와의 사랑에서 나 자신을 떼어놓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순교자들이 보시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너무 쉽게 보이곤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바쳐야 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재산과 가족, 부와 명예를 포기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지켜온 신앙을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봉사와 나눔, 우리의 사랑과 희생으로 순교자들의 신앙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읽었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밤하늘이 있기에 별들은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은
별들이 많은
은하수 같은 것입니다.
별들이 많기에
밤하늘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우주라는
어두운 하늘이 있습니다.
별들이 밤하늘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