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저녁에 손신부님께서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새벽미사에 못 나올 것 같다는 문자였습니다. 저는 어제 교리가 있었고, 신자 분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문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새벽에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일찍 보았으면 바로 답장을 보냈을 텐데 제가 보지를 못해서 답장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신부님께서 밤새 어떻게 할지 고민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침에 나와야 하나, 나오지 않아야 하나!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 사목국에 있을 때 함께 지내던 주교님께서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늘 이렇게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 어려움도, 갈등도, 아픔도 다 해결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제 앞에 어떤 일이 생기면, 먼저 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 판단의 기준은 ‘양보, 용서, 이해와 협력’이기보다는 저 자신의 욕심을 먼저 따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양보하고, 용서하며, 이해하셨을 것들을, 저는 자존심과 이기심 그리고 분노와 원망을 앞세워 단죄하고 미워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신앙인은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기 때문에 간디는 신앙인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존경하지 않는다.’ 이 말은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앙인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권고 하고 있습니다. 욕심과 욕망을 따라 불나비처럼 거짓과 불의의 불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도 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나오지만, 우리 주변에는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체면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욕심과 명예 때문에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그라든 마음을 바르게 펴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살게 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은 우리 삶의 모든 지혜와 보물을 알려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다른 어떤 법과 질서보다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주님과 함께 오그라든 나의 마음을 활짝 펼 수 있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