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2011. 8. 28. 오전 5: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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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에는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올해 사제서품 20주년을 기념하면서 함께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20년 동안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앞으로 남은 사제생활도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주민투표가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투표와 선거로 이루어집니다.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뜻을 이룬 쪽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하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쪽도 솔직하게 시인하고 뜻을 이룬 사람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치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결국 같은 시간과 공간 아래서 살아야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아들 중에는 조식이 있었습니다. 조식은 조조의 셋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출중해 아버지인 조조에게서 총애를 받고, 형인 조비에게서는 심한 질시와 견제를 받았습니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조식을 견제하며 해치울 기회만 엿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만약 그 동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때 조식이 절박한 심정으로 지었던 시가 바로 ‘칠보시’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마솥 안에 있는 콩을 가마솥 아래의 아궁이에서 그 콩을 깐 콩깍지로 끓이고 있습니다. 끌어야 하는 콩이나, 태워야 하는 콩깍지나 결국은 같은 곳에서 나온 콩이라는 의미입니다. 형제를 죽여서 권력을 얻으려하는 싸움이지만 결국 형제는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조비는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민투표를 하자고 했던 사람들도 주민투표를 하지 말자고 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모두 주민을 위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주민들이 선택을 했으니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상생과 화합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느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결국 사탄이란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먼저 챙기려는 마음과 행동입니다.

예전에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를 유혹하는 3가지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했습니다. 어떤 것으로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까요?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것처럼 뱀의 모습을 하고 맛있어 보이는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했던 것처럼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거나, 높은데서 뛰어내려보라거나, 무릎을 꿇으면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주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읽었고 그런 유혹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할까요? 생각보다 단순하면서도 쉬운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런 쉽고 단순한 유혹 앞에 넘어가곤 합니다.

첫 번째는 ‘다음에 하자!’라는 유혹입니다.
두 번째는 ‘남들도 그렇게 한다.’는 유혹입니다.
세 번째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유혹 앞에 걸려 넘어집니다. ‘기도 다음에 하지 머, 나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머, 희생 좀 더 벌면 하지 머, 봉사 애들 결혼하면 하지 머’ 이러다가 시간은 다 가고 결국 하느님 앞에 나갈 때가 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저는 두 번째 유혹 앞에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운전을 하는데 앞차가 빨간 불에서 건너갔습니다. 저도 앞차가 가니까 따라서 건넜습니다. 결국 경찰은 앞차는 보내주고 저와 저를 따라온 뒤차를 잡았습니다. 경찰에게 왜 앞차는 안 잡느냐고 말을 해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따라서 해야 될 분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삶을 따라했던 성인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 우리보다 악한 사람들과 비교를 하려합니다.
세 번째 유혹 앞에서 넘어진 것은 오늘 복음에서 나온 베드로 사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는 천국의 열쇠도 받았고, 교회의 반석이 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적당히 즐기고, 정당히 베풀고, 적당히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적당히 즐기고, 정당히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신앙은 적당히 회색지대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결단이고, 신앙은 행동이고, 신앙은 실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머물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동과 실천이 바로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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