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 주보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행은 불평의 문으로 들어봅니다.’ 늘 감사하는 사람은 늘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늘 불평하는 사람은 늘 불행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생태마을을 운영하는 황창연 신부님은 ‘사는 맛, 사는 멋’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느 시골의 성당에서 복사를 서던 아이가 그만 실수로 포도주 병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본당신부님은 화가 나서 그 학생에게 야단을 치면서 성당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이는 그 이후 성당에 나오지 않았고, 나중에 많은 종교인들을 박해하던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본당신부님이 그 아이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했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복사를 서던 아이가 실수로 포도주 병을 깨트렸습니다. 본당신부님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고 하시면서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나중에 미국의 가톨릭교회를 이끌었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말씀에서 요나와 하느님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요나는 불평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도시인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고 하느님께 잘못을 하였습니다. 요나의 생각에는 니네베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잘못한 이들을 조건 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였습니다.’
본당에서도 ‘분노와 원망’ 때문에 힘들게 사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분노할 만한 이유도 있고, 원망할 만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노와 원망은 참된 자유와 치유를 주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오직 용서와 화해만이 참된 자유를 줄 수 있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행복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참된 자유가 방긋 웃으며 들어올 것입니다.
지난 주 주보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행은 불평의 문으로 들어봅니다.’ 늘 감사하는 사람은 늘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늘 불평하는 사람은 늘 불행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생태마을을 운영하는 황창연 신부님은 ‘사는 맛, 사는 멋’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느 시골의 성당에서 복사를 서던 아이가 그만 실수로 포도주 병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본당신부님은 화가 나서 그 학생에게 야단을 치면서 성당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이는 그 이후 성당에 나오지 않았고, 나중에 많은 종교인들을 박해하던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본당신부님이 그 아이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했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복사를 서던 아이가 실수로 포도주 병을 깨트렸습니다. 본당신부님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고 하시면서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나중에 미국의 가톨릭교회를 이끌었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말씀에서 요나와 하느님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요나는 불평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도시인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고 하느님께 잘못을 하였습니다. 요나의 생각에는 니네베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잘못한 이들을 조건 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할 때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였습니다.’
본당에서도 ‘분노와 원망’ 때문에 힘들게 사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분노할 만한 이유도 있고, 원망할 만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노와 원망은 참된 자유와 치유를 주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오직 용서와 화해만이 참된 자유를 줄 수 있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행복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참된 자유가 방긋 웃으며 들어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