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학 입학 수학능력 시험이 이제 3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수험생들의 어머니들께서 성당에 모여 수험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난주에 함께 했는데 어머니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험생들이 모두 원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험생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등급에 따라서 아이를 소개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1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정말 공부를 잘 합니다.’ 2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성격이 참 좋습니다.’ 3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건강하나는 끝내 줍니다.’ 4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아버지 닮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성적에 따라서 등급을 정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등급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의 등급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평생 변하지 않는 등급도 아닌 것입니다.
무지개의 색깔은 일곱 가지입니다. 그것은 일곱 개의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색깔이 있는 것입니다. 일곱 개의 색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자연은 이렇게 서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저마다의 특징을 드러내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존재합니다.
신앙은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업적에 따라서 등급을 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그의 능력이나 그의 업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이든, 로마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와 같은 생각은 서열을 정하고, 등급을 매기려고 하는 우리들의 사고와 관습을 허물어 버리는 혁신적인 태도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노예도, 여자도, 죄인도, 병자도, 이방인도, 유대인도 구별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세상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세상은 가지고 있는 직책에 따라서, 세상은 그 능력과 업적에 따라서 등급을 매기고 순위를 정하지만 신앙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믿음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교리를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처럼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은 더 많은 차별과 신분의 높은 벽에 갇혀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순교할 수 있었고,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고, 그 믿음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 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을 등급으로 정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두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11. 10. 15. 오전 6: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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