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4구역 김용대 야고보 형제님을 위한 병자성사가 있었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수술을 3번 받으셨고, 경과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형제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병자성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본당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같은 레지오 단원들께서 병원에 마련된 기도실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의사처럼 직접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수술중인 형제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김용대 야고보 형제님께서 건강한 몸으로 가족들에게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지금 죽음 직전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든 고향 땅을 떠나 낮선 이국땅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이방인의 삶을 사는지 잘 모릅니다. 개발의 현장에서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하는 세입자들은 또 얼마나 있는지 잘 모릅니다. 신문과 방송은 그런 아픈 곳, 어두운 우리의 현실을 잘 보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의 생활을 보여주며, 개발의 결과 나타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길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과 욕심의 길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며,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죽게 만드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 길은 사람을 살리고,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갈릴래아에서 죽은 사람들이 우리 보다 죄가 커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여러분 보다 더 큰 잘 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의 뒤에는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무관심이 언제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올지 모릅니다. 오늘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메아리가 되어 내가 사랑하는 이들 또한 고난의 현장에서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 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어제는 4구역 김용대 야고보 형제님을 위한 병자성사가 있었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수술을 3번 받으셨고, 경과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형제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병자성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본당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같은 레지오 단원들께서 병원에 마련된 기도실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의사처럼 직접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수술중인 형제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김용대 야고보 형제님께서 건강한 몸으로 가족들에게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지금 죽음 직전에 있는지를 모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든 고향 땅을 떠나 낮선 이국땅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이방인의 삶을 사는지 잘 모릅니다. 개발의 현장에서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하는 세입자들은 또 얼마나 있는지 잘 모릅니다. 신문과 방송은 그런 아픈 곳, 어두운 우리의 현실을 잘 보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의 생활을 보여주며, 개발의 결과 나타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길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과 욕심의 길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며,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죽게 만드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 길은 사람을 살리고,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갈릴래아에서 죽은 사람들이 우리 보다 죄가 커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여러분 보다 더 큰 잘 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의 뒤에는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무관심이 언제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올지 모릅니다. 오늘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메아리가 되어 내가 사랑하는 이들 또한 고난의 현장에서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 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