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목요일 신학교에서 학생들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강론을 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하고, 긴장들을 하였지만 요즘은 학생들의 강론을 듣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목요일이 오는 것이 재미없고, 싫었습니다. 멀리 혜화동까지 가야하고, 학생들에게 설교학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매 주 목요일 신학교에 가는 것이 제게는 설렘이고,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한 학생이 강론을 하면서 자신의 체험담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학생의 체험담은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 체험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돈 보스코 센터에는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불우한 환경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기술만 배워서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틈틈이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돈 보스코 센터에서 지냈었기 때문에 그 학생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한 학생이 화를 내면서 나갔습니다. 그날 수학은 방정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x + 3y = 10과 같은 방정식을 가르쳤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간 학생이 걱정이 돼서 학생에가 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왜 화를 내고 나갔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 학생이 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왜 수학 시간에 영어를 가르치나요?” 그 학생은 수학 시간에 영어 단어가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학생이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선생님은 학생을 잘 설득해서 교실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가 있습니다. 저는 후보자들의 선거 전략을 보면서 수학시간에 영어를 가르친다고 화를 냈던 학생이 생각났습니다. 서울시장 후보는 각자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이야기 하면 됩니다. 서울특별시를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시킬지, 서울특별시를 사람이 살만한 도시,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도시, 쾌적하고 깨끗한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면 됩니다. 서울특별시에 사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주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보여주면 됩니다. 서울특별시를 위한 경제, 복지, 문화, 예술, 교육 등에 대한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방 후보에 대한 비난과 비방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선거는 축제가 되어야 하고, 승리한 사람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패배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주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시장이라는 자리가 삶의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기기 위해서 상대방의 허물과 흠집을 들추어내는 선거방식은 아름다운 축제의 자리에 악취가 가득한 오물 덩어리를 뿌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비록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비방으로 얼룩져가는 선거지만 우리들은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입니다. 전교주일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것, 이웃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성전을 짓고, 많은 비용을 들여서 행사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참된 복음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된다면 사람들은 그 빛으로 모여 들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이 된다면 사람들은 우리들을 찾을 것입니다.
서울대교구는 명동 개발을 통해서 새로운 건물을 짓고, 문화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성모 병원을 새롭게 지어서 의료를 통한 복음화를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본당을 짓기 위해서 땅을 사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복음화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화는 우리들 각자가 삶을 통해서 우리가 배운 신앙을 우리가 아는 사랑의 기쁨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은 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걸어서 5분 거리면 성당이 있습니다. 개신교회는 불과 몇 백 미터만 걸어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당마다 냉담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가난한 이들이, 장애인들이, 굶주린 이들이 성당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복음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많이 배우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래층에 사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분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그분들의 대모가 되셨습니다. 이웃을 만나시는 어머니의 모습,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어머니의 미소를 생각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삶을 통해서, 나눔을 통해서, 사랑을 통해서 전해질 때 진정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2011. 10. 23. 오전 5: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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