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2011. 7. 24. 오전 4:55:30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본당의 복사들이 홍천으로 물놀이를 갔습니다. 학교에 가라면 늦잠을 자는 아이들이, 성당에 가라면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들이 새벽부터 성당으로 왔습니다. 물놀이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어른들은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부터 신학생들을 위한 30일 피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1년 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신학교까지 1시간 30분 걸리고, 면담은 2시간을 합니다. 하루에 5시간은 신학생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래도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을 했습니다. 긴 장마도 그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왔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서 잠시 휴가를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계곡,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바다, 모든 것을 품에 안고 있는 산을 향해 휴가를 가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피정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농촌 봉사활동을 가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밀린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선택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최인호 씨는 최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시대 최고의 작가였습니다. 그분이 쓴 소설은 영화로 제작이 되기도 했고, 드라마로 제작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대표적인 소설은 ‘별들이 고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불새, 해신, 상도, 천국에서 온 편지’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최인호 씨는 서울교구 주보에 말씀의 이삭을 3년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가로서, 신앙인으로서, 길을 찾는 구도자로서 그분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암투병중인 최인호 씨는 암과 싸우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소설가로 글을 쓰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이해인 수녀님도 암투병중이라고 합니다. 수녀님도 암투병 중에도 영혼을 울리는 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죽었다는 말을 듣기 보다는 무엇을 하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낯익은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면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낯익은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무소유를 이야기했던 법정스님은 낯익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버리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고자 하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마지막 길에도 망막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눔은 소유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의사이면서 사제였던 이태석 신부님은 ‘너희 중에 가장 가난한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낯익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더 많은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을 위해 투신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이 세상이라는 밭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보물을 발견하였고, 그분들은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기꺼이 포기 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선택을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솔로몬은 낯익은 이 세상에서 지혜라는 보물을 발견하였고, 하느님께 그 지혜를 청하였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매일 빵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지혜로운 것은 배고픈 이에게 일을 할 수 있는 건강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빌어먹는 것보다는 스스로 일을 하면서 빵을 얻고, 남는 빵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보물이 묻혀있는 밭과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많은 보물들이 묻혀있습니다. ‘진실, 사랑, 나눔, 무소유, 희생, 봉사, 겸손, 양보’의 보물들입니다. 이 보물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하고,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는 진주와 다이아몬드가 먹을 수 없는 돌처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을 삽니다. 그 보물을 간직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병 때문에, 돈 때문에, 욕심 때문에,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을 하다가, 가진 것을 나누다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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