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2011. 7. 17. 오전 5:17:1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일에는 선교 산악회 회원들과 호압사를 거쳐서 삼성산 성지까지 다녀왔습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올 확률이 90%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조금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 산행을 마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본당에서 행사를 할 때는 거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산행을 했습니다. 시흥5동 성당은 산이 가까이 있어서 산행을 하기에는 참 좋은 성당입니다. 형제님께서 산행을 한번 하면 보약을 한재 먹는 것과 같다고 하시더군요. 가능하면 주일 교중 미사 후에 산행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보약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저와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잠시 음식을 나누는데 막걸리를 한잔 하자고 하였습니다. 형제님 한분께서 기쁜 마음으로 산 아래까지 막걸리를 구하러 가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수고를 하시는 형제님을 보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1985년도에 신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천마산으로 여름캠프를 갔었습니다. 저와 주일학교 교사들은 이틀 전에 가서 미리 텐트를 설치했습니다. 첫날 산 정상에서 식사를 하는데 소주를 한잔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에 가장 나이가 어린 교사가 있었습니다. 이름도 생각납니다. ‘조용기’ 교사였습니다. 그 교사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40분 동안 산 아래로 내려가서 소주를 사왔습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습니다. 교사가 소주를 사왔을 때, 담배가 떨어졌습니다. 선배들은 담배가 떨어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교사는 그때도 아무 말 없이 다시 산 아래도 담배를 사러갔었습니다. 아마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산 아래로 내려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앙은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땀을 흘려주는 것은 아닐까요?

광고는 제품을 선전하는 수단입니다. 좋은 광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제게 신선한 충격을 준 광고 중에 하나는 회사 사장님이 직접 출연해서 하는 광고였습니다. ‘산수유, 그거 참 좋은데,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 머라 말 할 수는 없고!’ 제품에 대해서 특별하게 설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력적인 남성이 광고 모델도 아닌데 그 선전은 제게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또 하나 제게 인상적인 광고가 있습니다. 그것은 탤런트 이순재 씨가 출연한 광고였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시켜 드린다는 보험 광고’였습니다. 암 보험 같은 것은 막상 가입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가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순재 씨가 출연한 광고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해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 ‘참 좋은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머라 말하기가 어려우셨는지 몇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는 가능성의 나라입니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는 나라는 아닙니다. 지금 부족한 사람도, 지금 잘못한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 함께 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을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누룩은 아주 작은 양이지만 빵을 커다랗게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 시작은 비록 작을지라도 끝은 아주 풍요로울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작은 겨자씨는 자라면 새들이 깃들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도 그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모든 생명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출발합니다. 커다란 코끼리도 그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정자와 난자의 만남입니다. 우리 모두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움이 함께하면 가능성은 현실이 되고,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또 다른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하십니다. “밀밭에 뿌려진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십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장애인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의 기반 시설들을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걷는 것도, 차를 타는 것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이용하는 시설들에 대해서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교도소에 수감을 시키고 일정기간 사회와 격리 시키는 것이 우리의 교정방법입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몇 번을 다녀와도 진심으로 마음이 바뀌고 뉘우치는 것을 보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교도소에서 진심으로 ‘교정’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재활의 기회를 줄 때 ‘교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본당 공동체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분위기를 어색하게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교우가 있습니다. 그 교우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공동체에 평화가 오고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데, 정말 이상하게 이사를 가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못된 사람이 없어진다고 해서 참된 평화가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암에 걸렸지만 완쾌된 사람들은 대부분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봅니다. ‘결코 암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암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다. 암을 미워하고 저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내안에 들어온 손님으로 맞이하였다. 나의 삶이 암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원인을 제공한 면도 있기에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였다.’ 이런 마음가짐이 암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통을 주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암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암과 투쟁하고 싸우면 싸울수록 더 힘든 상황에 이르는 것도 보게 됩니다.

적과의 동침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걱정도 되고, 힘들게 만들어 놓은 공동체가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넘어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버림받은 이들, 잘못한 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관대함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복음 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