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본당의 복사들이 홍천으로 물놀이를 갔습니다. 학교에 가라면 늦잠을 자는 아이들이, 성당에 가라면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들이 새벽부터 성당으로 왔습니다. 물놀이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어른들은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부터 신학생들을 위한 30일 피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1년 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신학교까지 1시간 30분 걸리고, 면담은 2시간을 합니다. 하루에 5시간은 신학생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래도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님께서 복음화 학교 피정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고, 미사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피정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새천년 복음화 사도회의 가족들에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의 힘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복음화 학교는 평신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복음화 학교가 더욱 발전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은 복음화 학교 가족들에게 확신을 주었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 더욱 노력하라는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날 강의 중에서 주교님께서는 ‘구원’에 대한 개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땅의 축복’이었습니다. 더 많은 가축을 기를 수 있고,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땅을 소유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며, 구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더 많은 가축과 더 많은 땅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으며, 믿음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자유와 해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자녀 중에 아들은 태어나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비록 이집트 땅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었지만 자유와 해방이 없는 삶은 굴욕과 굴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말씀해 주십니다. 자유와 해방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셨고, 드디어 근심의 바다, 두려움의 바다, 허무의 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정의의 실현’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막에 물이 솟아나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뛰어노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묶인 이들이 자유를 얻고, 눈먼 이들은 눈을 뜨고, 굶주린 이들은 배불리 먹게 되는 세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복지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말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시대에 구원의 개념은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보다 앞서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의 품격을 높여 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순교한 다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말씀과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과 풍요로움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통해서 우리를 ‘죄, 악, 죽음’에서 자유롭게 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땅의 축복, 자유와 해방, 정의의 실현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넘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실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의 백두산처럼 의미가 있고, 소중한 산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위치한 산은 아니고, 이집트에 있는 산입니다. 그 산의 이름은 ‘시나이 산’입니다. 어째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나이 산’이 소중한 산일까요? 우리 신앙인들에게 ‘시나이 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시나이 산은 유대인 역사에서 신이 그 모습을 드러낸 중요한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시나이 산에서 신이 모세에게 10계명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탈출 20, 신명 5). 유대인 전설에 의하면 시나이 산에서 10계명뿐 아니라 성서내용 및 주해서 전체를 모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체험한 역사적 공간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 모세가 양떼를 몰고 시나이 산(호렙산)으로 갔더니 야훼의 천사가 떨기나무에 이는 불꽃으로 다가왔다. 모세가 가까이 보러가자 떨기 가운데서 하느님이 ‘모세야, 모세야’하고 불렀다. 모세가 ‘예, 말씀하십시오.’라‘고 대답하자, 하느님은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어라.’라고 하시더니 모세더러 곧장 이집트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고, 이 산에서 하느님을 예배토록 하라고 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대답하오리까.’라고 물으니 하느님은 ‘나는 나다.’고 하셨다.”(탈출 3)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리고, 출애굽을 지시하였습니다. 기원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의 중재자로 시나이 산에 올랐습니다. 모세는 거짓과 유혹, 노예살이와 억압을 벗어나 당신 품에서 새로운 세상, 인간다운 삶을 계약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삶의 기준이 되는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을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면 우리는 신앙의 ‘시나이 산’엘 매일 오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