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돌아보며...

김재화

2004. 12. 31. 오후 4:20:05

2004.

 

왠지 이 년도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03년은 뉴저지에서 보낸 한 해였다면,

 

2004년은 필라델피아와 워싱턴에서 보낸 해였다.

 

미국에 와서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과 지낸 한해.

 

작년과는 또 다른 체험들이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기억은 워싱턴의 작은 공동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주님께서 주신 것은 주님께서 체우신다는 야훼이레의 체험을 하고 있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기억은 조그만 의견 차이 때문에 사제와 신자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체험 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선한 의지를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선한 의지도 한번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악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기도가 참으로 필요하다, 신앙생활은.

 

내 스스로가 기특하게 생각되는 기억은 한 달 동안 미사를 하며 연령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 한 것과 여태껏 게으름 피우지 않고 워싱턴에 매 주 미사를 간 것이다. 이 두가지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한 것이라고 믿는다,  난 의지가 약한 인간이기에.

 

내 스스로가 답답하게 생각되는 기억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숙제인데, 어떻게 하면 영어권의 아이들과 가까워 질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아직도 높기만 하다.

 

나를 흐뭇하게 하는 기억은 신자분들과 함께 피정을 한 것이다. 일리리아에서의 워싱턴 가족과의 피정, 스프링필드  가족과의 피정, 홀리 크로스 가족과의 피정, 델라웨어 가족과의 피정. 그 피정들을 통해 나의 신앙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나를 쑥쓰럽게 하는 기억은 좋은 강론이었다는 칭친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의 자리가 아직 안주되어 있지 않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깊은 기도를 드리지 못했던 시간들이었기에 주님께 죄송함을 느낀다. 내 자신은 부족했지만, 주님은 내 부족함을 그렇게 당신의 은총으로 체워주셨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올 해의 인물은 하 영래 요아킴 신부님이다. 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시는 신부님. 신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겸손이 무엇인지를 많이 배웠다. 때로는 신자들의 불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난 보고 있다, 긍정적으로 변해 가는 한 작은 교회의 모습을. 모든 이의 뜻이 합쳐 질 수 있는 교회는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올 해 나에게 기쁨이 되었던 순간은 필라델피아 신자분들과 워싱턴 가족들이 나의 영명축일을 같이 기뻐해 준 것이다. 작년에는 혼자 쓸쓸히 자축했던 영명축일이라 더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늘 "인간에게 의지 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라"고 홀로 되뇌이지만, 인간적인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기억은 주위에 근심 걱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근심들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자식의 문제 때문에, 가족의 질병 때문에, 영주권 문제 때문에 걱정하는 수 많은 분들...단지 기도 할 수 밖에 없는 내 자신. 주님은 나의 부족함을 이렇게 깨닫게 하신다. 겸손을 이렇게 마음에 담아주신다.

 

올 해 내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한 것이 있다면, 윈드서핑이란 것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윈드서핑. 인간의 육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강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게을러지려고 하는 내 자신의 육체. 늘 깨어 있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 점점 늘어만 가는 육체의 부피가 내 영혼의 성장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한다.

 

올 해의 내 삶은 여전히 나 자신의 만의 삶이 아니었음을 되돌아 본다.

 

얽히고 섥혀 있는 우리들의 삶.

 

그 삶이 꼬이지 않도록 매일 매일을 주님 안에서 잘 정리하며 살아야겠다.

 

올 한해 이렇게 주님 안에서 마무리하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들의 내년.

 

지금은 미래지만 또 내년의 지금이 되면 과거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는 날들....충실히 살자. 아자. 

 

댓글 8

  • 2004년 12월 31일 오후 5:05

    2004년의 마지막 오늘.. 저도 저만의 한해를 돌아볼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갖어야겠어요.. 신부님 화이팅!!

  • 2004년 12월 31일 오후 10:50

    신부님 감사합니다,그마음의 고백을 통해 저자신을 돌아보며,한해를 미사로 감사를 전해드릴께요.

  • 2025년 12월 28일 오후 1:41

    한해를 뒤돌아보시며 성찰하시는모습이 참아름답습니다. 저도 올한해에도 무탈하고 건강하고 잘지낼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도움이시라믿으며 감사드립니다.

  • 2025년 12월 28일 오후 5:32

    젊은날에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긍정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시는 모습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 2025년 12월 28일 오후 6:54

    한 해를 기억하시며 뒤돌아보시고 정리하시는 신부님을 보며 저도 한 해를 어떻게 보냈나 돌아보게 되네요. 다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큰 동요없이 무탈하게 보내게 해 주심에 주

  • 2025년 12월 29일 오후 4:58

    한해를 되돌아보며 정리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니 참으로 은총과 감사의 날들이었음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의 기도에도 감사드립니다.

  • 2025년 12월 29일 오후 5:01

    한해를 돌아보시며 늘 주님 앞에 자신을 성찰하시고 묵상하시고 일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사제의 삶이라 보여집니다..

  • 2026년 1월 10일 오전 6:52

    감사합니다 신부님,10가지의 돌아보심을 통해 우리에게 갈 방향을 알려 주심을 .나도 올 한 해 이렇게 적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