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생활하는 곳에 얼마나 쉽게 적응하게 되는지 모른다.
어느새 나도 미국에서 생활한지가 이제 만 4년이 되어 간다.
하루에 한국어보다 영어를 읽고 듣는 시간이 많다보니,
점점 한국어에 대한 감이 떨어진다.
며칠 전에 주일 한국인 미사를 위해 강론을 준비하다가,
한참을 골머리를 앓았다.
한 단어가 떠 오르지 않아서...
사람의 시체를 불에 태워 장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영어로는 생각이 나는데...한국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영한 사전을 찾아 보아야 했다....화장이라는 말이 이렇게 생각이 나지 않다니...
얼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야 하는데,
나는 "퇴학"하고 무엇을 하니...하고 묻고 말았다.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기에,
대화가 아무탈 없이 지나갔지만,
옆에 계시던 연세드신 자매님께서,
신부님 "퇴학"이 아니라 "퇴교"를 뜻하는 것이지요? 하고 반문을 하셔서,
내가 잘 못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말하듯이,
한국어가 어렵다는 것을 점점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자리에 이렇게 쉽게 익숙해 진다.
삶의 자리에 이렇게 쉽게 익숙해 진다면,
아마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매일 겸손되이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자신을 반성하는 신앙인과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머리를 쉴틈 없이 써야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삶은 분명 다른 결론을 가져올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그것은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내 영혼을 위해 바른 길을 걷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이제 한국에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았는데,
다시 한문과 한자를 좀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