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의 달. 그리고 위령의 날. 우리는 모든 죽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자신의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은 우리의 기도를 많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 불쌍한 영혼들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오늘 구원의 은총을 입을 것입니다.
위령의 날을 맞이해 예수님은 아직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깨어 있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늘 깨어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준비된 자로 이 세상을 살고, 하느님 나라에서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예수님은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죽음은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아직 젊음을 살아간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듯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죽음을 준비하는 자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임 신부님과 하루는 가을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점심도 사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리 고기를 먹기로 하고, 식당을 향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주위의 산세에 경탄을 하기도 하며 식당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길을 가는 것을 보시고, 주임 신부님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만약 저 할아버지가 묵주기도를 배우셨다면 얼마나 많이 기도를 하셨을까?” 저는 갑자기 왜 주임 신부님이 길을 잘 가고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시비를 거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계속해서 이런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주시는데, 그래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니까, 나이가 들어 다리의 힘을 빼신다고. 그렇게 다리의 힘을 빼 놓아야 돌아다니지 못하고, 앉아서 하느님께 기도할 것 아니냐고. 눈을 멀게 하신다고. 세상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기 위해. 귀를 먹게 하신다고. 들리는 것 뿐 아니라, 들리지 않는 진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려고.
참으로 진리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을 준비하는 삶임을 주임 신부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자신의 죽음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깨어 있는 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손에 충분한 기름이 담긴 등을 가지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