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금씩 신, 망, 애의 세 개념에 대해 명확함을 느낀다.
왜 예수님이 사랑을 그 첫째 자리에 두셨는지 명확해 진다.
마태오 복은 14-18장까지의 일화들을 묵상해보면 이를 확인해 갈 수 있다.
14-15장의 이야기는 희망을 들려준다.
서로 다른 희망의 충돌이 갈등으로 변화됨을,
인간의 한계상황 중 하나인 절망을,
그리고 전염성을 가진 희망에대해...
16장은 믿음에 대해 들려준다.
믿음이란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짐임을
목적을 잃어버린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지,
믿음의 깨어짐은 관계를 깨뜨린다는 것을,
자신의 것을 모두 건 신앙의 삶은 그 자체가 선교가 됨을 가르쳐 준다.
17-19장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사랑이란 두려움을 믿음에로 이어주는 계기임을,
진정한 사랑이란 성령이 이끌어 주심을,
베푸는 사랑은 더 큰 사랑을 알게 한다는 것을....
이렇게 마태오 복음의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희망에서 믿음에로,
그리고 믿음에서 사랑에로 걸어가고 계심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결혼생활을 예로 들어본다.
결혼이라는 예식은 자신을 온전히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두려움일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미래의 배우자에 대한 희망으로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희망은 이렇게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인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서 현실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내가 바라는 배우자를 만났다는 믿음이 없다면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 믿음이 없으면 그들은 부부가 아닌 친구나 애인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생겨나는,
삶을 통해 우러나는 진솔한 것이다.
희망과 믿음으로만 이루어진 결혼 생활은 끝없는 희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은 그래서 이혼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이란 희망과 믿음처럼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렵다.
사랑이란 내가 하는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고 받는 것이 온전 할 때 사랑은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결혼 생활은 그래서 신앙의 생활과 같지 않을까?
우리가 내 마음 안에 품고 있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내 가족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내 가족들은 그 사랑 안에서 더 큰 사랑으로 자라날 수 있을테니까....
교회가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임을
그래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온전한 사랑이 없는 신앙은 지속 될 수 없다.
온전한 믿음이 없는 희망은 쉽게 꺾여 버린다.
희망이 없는 삶은 기쁨이 없다.
우리들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자라길 기도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