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금요일부터 성지순례를 떠난다.
워싱턴에서 8시간 차를 타고 가야하는 먼 여정이다.
버스를 대절해서 50명의 신자와 떠난다.
그런데 내 자신에게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성지순례를 가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본당에 남아 미사를 드려야 할것인지?
아니면 처음에 약속을 했듯이 성지순례를 가야할지 결정을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신자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성지순례자 보다 남는 자들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되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결정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미사 시간에 신자들에게 물어 보았다.
만약 개인개인이 그런 신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처음에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이해되는 데로 손을 들었다.
성지순례를 가는 사람은 가야하는 쪽에,
가지 않는 사람은 남아서 미사를 해 주는 쪽에.
난 신자분들에게 지금 자신의 결정을 마음에 담고 강론을 들어주기를 부탁했다.
오늘 복음에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를 듣는다.
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러 왔다.
이제 그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고관대작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가 그들이다.
세례를 받은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유명하긴 유명한 사람이구나 라고....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은 그런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을 힐책한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엄청난 표현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말한다, "도끼가 뿌리에 닿았다"고...
아브라함의 자식이기에 자신들은 선민으로서 하느님의 나라에 당연히 들어갈 사람으로 자처하던 그들...
그들은 이제 세례자 요한에게 거부를 당한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고...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은 그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 물로 그들의 죄를 씻어줄 수 있었던 요한을 죽음을 이끌었고,
불과 성령으로 그들의 죄를 씻어주실 분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를 했더라면,
그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분열이 아닌 일치에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부와 권리를 버릴 수 없었기에,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난 이렇게 강론을 하고 신자들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이렇게 둘로 갈라져 있는 상황이라고...
서로가 자신의 자리만 찾는다면 사두가이나 바리사이파와 다를 바가 없음을...
무엇이 진정으로 공동체에 이바지가 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면,
우리 공동체가 더 발전되고,
기쁨이 커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난 다시 신자분들에게 손을 들어 자신들의 뜻을 표현해 주기를 청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자리가 되었다.
성지 순례를 가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남은 사람들은 성지 순례를 가는 사람들을 위해 손을 들어 주었다.
이렇게 같은 숫자의 손이지만 그 뜻이 아름다움으로 변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같은 손이지만, 다른 뜻을 손에 움켜진 아름다운 손.
우리의 여정은 이렇게 이어진다.....아름답게. 아름답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