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사 시간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한 강론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했나보다.
사람은 서로가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미사를 했다.
미사 후에 오늘 강론이 너무 훌륭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칭찬을 들으면 사람의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슬퍼지는 것이었다.
미국에 와서 강론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듣는다.
아마 그것은 다른 신부님들이 체험하지 못한
미국인들과의 체험이 있기에 그들과 공감대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
사람은 체험한 삶이 비슷하면 서로가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런데 어제는 그 칭찬의 질이 다른 때와는 달랐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 넘기려고 했는데,
신자분들이 계속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 이상한 생각 하나가 머리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신부님들이 강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부님들의 강론을 잘 듣고 가서 삶으로 행동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마 대부분의 신자분들은 훌륭한 강론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자분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강론을 못하는 신부님들을 뒤에서 험담 할 것이다.
강론을 잘 하건 못 하건, 그 내용은 모두 동일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 삶을 살자."
이것을 어떻게 포장을 하느냐에 따라 신자분들은 감동을 받거나, 미움을 마음에 담는다.
포장지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행동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귀로 들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한 순간의 달콤함으로 지나간다.
그것은 한 순간의 눈물로 주르륵 흘러 내릴 뿐이다.
우리들에게 남는 진정한 강론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변화" 되어 가는 삶 - 그것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내 스스로의 강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