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신도 주일의 숙제.
미국에서 평신도 분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요즘 제 일상중에 가장 보람 있는 일 중의 하나 입니다. 그 분들과 만나 기도도 하고, 그분들의 고민도 듣습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성사를 보듯이 말씀하시는 그 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숙연해 지기까지 합니다. 지금은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는 그 분들이지만, 누구나 속모를 고생들과 마음의 분노를 가지고 있기에 그분들의 삶은 그 자체로 가시밭길입니다.
아마 모든 분들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은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때로는 위로를 주기 보다는 더 냉혹한 채찍질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채찍질은 냉혹한 현실을 피해가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기 때문에 생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주님 앞에 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는지 따져 묻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게 하시려면 왜 나를 택해 보내셨냐고 말이다. 때로는 세상의 불의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외소한 모습때문에, 때로는 불가항력적으로 세상의 기쁨을 따라가는 내 자신의 초라함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 이런 한탄들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짐스러운 우리의 신앙을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조용히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한다.
무조건적인 신앙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신앙의 이유를 말이다....
그것이 평신도 주일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2.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연습으로서의 신앙생활....
평신도 주일인 오늘, 그리고 그리스도왕 대축일인 다음 주일 우리는 계속해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 위령성월인 이번달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복음 말씀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죽음의 시간인 종말이 단지 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희망으로의 옮겨감이기에 교회력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복음은 새 희망을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음이다.
내가 요즘 거의 묵상하다시피하며 읽고 있는 모리 교수의 이야기 중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죽음에 대한 대화이다.
제자가 물었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젊었을 때의 화려한 날들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그러자 모리 교수는 제자를 보며 미소를 보낸다.
그건 아직 제자가 인생을 맛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라고 말하며...
어렸을 때에는 너무나 인생을 쉽게 보고, 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왔던 시간임을 자신은 잘 알고 있음을 회상하며, 자신이 지금 이렇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 그 모든 자신의 인생의 결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며, 젊었을 때의 화려함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단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할 것이 두렵다고...
그러자 제자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어하느냐?"고..
교수는 대답한다.
그것은 그 시절의 화려함이 아니라, 아쉬움 때문에, 후회 때문이라고. 자신의 삶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젊음의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이라고....
난 이 글을 읽으면서 한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일생에 충실하게 살아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아 온 그 모든 순간에 말이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만족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주님 앞에서 내가 당신이 바라는 삶을 다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 힘든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양심을 버리지 않고, 주님이 우리 인간에게 바라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아마 이 모습만으로도 주님은 우리가 너무나 기특하시지 않을까? 아이가 부모의 뜻을 다 체우지는 못하더라도, 당신들의 뜻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신의 자녀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인가? 우리들, 지금 적어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님의 집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아멘.
주님, 이것이 저만의 생각은 아니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면 추운 겨울 저 얼음을 녹이는 따스한 햇볕과 같으리라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