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번 주에 사두가이파의 부활에 대한 논쟁을 들었다.
저 번 주에 우리가 들은 자케오의 이야기에 이은 오늘의 복음.
그 사이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정화 작업, 그리고 바리사이파와의 세금에 대한 논쟁이 있다.
오늘의 복음, 부활에 대한 논쟁은 우리에게 쉽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이 미래에 대해 논할 처지인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두가이는 절대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세의 복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이기에 이 세상외의 세상을 논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바라지 않는 부활의 세상은 분명히 존재함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나라는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말이다.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명칭이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자녀로서의 권한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하는 것은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절대적인 순종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
우리들의 삶이 이렇기를 교회는 바라며 기도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그 날의 선물과 축복은 하느님이 거저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미래의 복을 바라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충실히 살아감을 통해서 그 날의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너무나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늘 쉽게 흔들린다.
강인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 밑바닥으로 미끌어져 버린다.
거룩한 삶을 맛보는 순간 우리는 삶의 지루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유혹은 늘 거룩함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린다.
거룩함은 순식간에 더럽힘을 당한다.
그리고 그 유혹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다시 회개를 통해 주님께 나아가려 노력한다.
우리들의 삶은 이렇게 이스라엘이 걸어왔던 발자국의 연장선일뿐이다.
우리가 이 연장선을 걸어서 결국 약속된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절대적으로 우리의 결단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거나,
지나 온 과거의 영화만을 바라 본다면 우리는 결국 주님의 노여움을 받았던 이스라엘의 모습으로만 남게된다.
하루 하루 고성소에서 주님을 만나며 매일을 정화해 갔던 모세의 신앙을 따른다면
우리는 주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