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 주일 강론...

김재화

2004. 10. 30. 오전 9:08:04

연중 31 주일 루가 19,1-10

오늘 복음과 독서는 전체적으로 이 세상의 것들이 자신을 창조하신 분에게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지혜서는 노래한다 : "주님의 불멸의 정기는 만물 안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죄짓는 자들을 조금씩 고쳐 주시고, 그들이 죄지은 것을 일깨워 주시며 타이르시어, 그들로 하여금 악에서 벗어나 주님을 믿게 하신다."
이 세상 모든 만물 안에는 하느님의 온기가 들어 있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벗어나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다시금 당신 품으로 모든 것이 돌아오도록 섭리하고 계심을 노래해 주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훈계한다 :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적합하게 해 주시기를 빌며 선을 행하려는 여러분의 모든 의향과 여러분의 믿음의 행실을 당신의 능력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기에 단지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고 선을 행함 안에서 주님과 일치될 수 있기를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구원의 길을 완성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부족한 2%를 체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다.

오늘 복음은 그 부족한 2%를 어떻게 채워 가는지 한 인간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가르쳐 준다.

오늘 우리가 들은 루가 복음 19장의 첫 번째 이야기는 한 인간의 완전한 회개가 신을 만남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사람. 그렇기에 그 간절한 마음이 우러나와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보고자, 예수님이 오실 길을 미리 달려가게 했고, 자신이 타기 힘든 나무를 타고 올라갈 용기까지 냈던 자캐오. 우리는 이런 자캐오의 이야기를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들을 수 없기에 원래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지만, 루가 복음 사가가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자 이 자캐오의 이야기를 자신의 복음에 언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자캐오의 이야기는 오늘 복음이 들려주듯이 예리고라는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예리고라는 동네를 들어갈 때 있었던 일이 또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리고의 소경을 고쳐주시는 장면이다. 이 예리고의 소경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는 공관 복음이 동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 예리고에서 벌어진 두 이야기 - 소경을 고쳐주신 이야기와 자캐오의 회개 이야기는 거의 비슷한 틀을 지닌 이야기임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예리고의 소경은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군중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창피함도 잊어버리고, 어쩌면 그에게는 이런 자존심마저 남아있지 않았을 수 있다, 예수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 이는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노력과 비슷하다.
그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며, 사람들에게 그 소경을 데려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예수님과 상봉하는 장면은 자캐오의 것이 좀더 강한 예수님의 행동을 제시해 준다. 예수님은 누군가를 자캐오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자캐오를 향해 고개를 쳐드신다. 그리고 그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시기보다는 그의 집에 직접 당신이 머물기를 청하신다. 소경에게는 청을 하라고 하지만, 이제는 청을 하시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예수님의 청에 소경은 눈을 고쳐달라고 한다. 자신에게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예수님은 그의 행동 안에서 그의 믿음을 보신다. 그리고 그 소경은 감사를 드리며 예수를 따라간다. 이 장면 또한 자캐오의 것이 더 강한 인상을 보여 준다. 자캐오는 예수님의 청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신 안에 타오르는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예수님은 그래서 선언을 하신다. 소경에게는 단지 한 인간의 구원을 선포하셨다면, 이제는 한 집안의 구원을 선포하신다.

이렇게 루가 복음 사가는 자신의 고유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예수님과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구원의 관계가 증폭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을 입성하기 바로 전의 사건임을 우리는 머리에 두고 있어야 하겠다. 이를 통해 루가는 예수님께서 죄인이든 아니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 싶으셨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때로 자신의 즐거움을 따라가다가, 때로는 세상의 이익 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예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갈 때가 있다. 자캐오가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듯이, 우리는 우리들을 둘러친 세상의 것들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가운데에는 분명 자캐오가 올랐던 그 나무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방법들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나무를 찾지 않고, 군중들 속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히 자캐오가 뚫지 못한 그 군중의 벽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벽을 뚫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더 큰 벽을 만들뿐이었을 것이다. 우리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주님께로 얼마나 달려가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많았던가! 혹시 지금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면 다시 일어나도록 하자. 그리고 자캐오처럼 좀 더 앞으로 달려가 그 곳에 주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자. 언젠가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려 오실 것이다. 소경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자캐오의 부족함을 채워주셨던 분. 그 분이 우리의 신앙, 우리의 삶에 부족한 그 2%를 채워주실 것이다.

 

한 주일 건강하게 다들 잘 지내세요.

댓글 8

  • 2004년 10월 31일 오후 3:17

    강론말씀 좋으시네요.지금우리에게내려오라는말씀 내안의 모든욕심들예수님께 다내려놔야겠지요

  • 2025년 11월 24일 오후 9:29

    저도 하느님의 온기로 따뜻해져서 주님께서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살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신부님 매일 뵐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 2025년 11월 25일 오후 1:15

    하느님의 온기로 부족한 제 믿음을 일으켜 주시며 힘내어 같이가자고 하신다. 함차고 용기있게

  • 2025년 11월 25일 오후 3:31

    세상것만 보고 세상가치만을 보고 살았던 소경과 자캐오를 다시 나게 해 주신 예수님의 자비와사랑을 보며 나도 주님께 나아가는데 장애되는 것에서 과감히 일어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5년 11월 25일 오후 8:12

    만물속에 계신 하느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 그 사랑으로 누군가 다시 눈을 뜨게하고자캐오가 회개했듯 나무에서 내려와그분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행동하는 삶을

  • 2025년 11월 25일 오후 8:15

    향하여 온전히 의탁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2025년 12월 2일 오후 6:29

    감사합니다 신부님! 어쩌면 우리마음을 꿰뚫으시고 강론을 하셨는지 신비입니다. 소경과 자캐오 성인의 말씀을 우리가 잘 깨닫도록 강론하여 주심에 갑사드립니다.작은 믿음이지만 달려 볼랍

  • 2025년 12월 2일 오후 6:30

    니다. 큰 소리로 주님의 찬양할렵니다. 신부님 말씀에 신명나게 소리쳐 봅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그리고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