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 복음은 너무나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무엇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시는지 해답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 답을 문득 잠을 청하며 마지막 기도를 드리다 얻었다.
난 여태껏 오늘의 복음을 "기도"라는 것에 한정해서 묵상을 했다.
그렇기에 과부의 끈질김과 기도를 연결하려고만 노력을 했다.
이 노력은 오늘의 복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18장의 시작을 열고 있는 오늘의 복음 이전에 예수님은 종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종말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않기를 부탁하신다.
예수님이 이 순간에 과부의 끈질김을 이야기하시는 것은 그렇기에 단순히 기도와의 관계성만을 갖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가 과부의 본질에 다가가기를 바라신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과부는 진정으로 약자였다.
여인들은 남자들의 제물 목록에 속할 뿐인 세상에서,
남편을 잃어버린, 주인을 잃어버린 여인이 어떤 취급을 받았겠는가?
그녀는 수없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런 그녀가 매달릴 곳은 정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판관뿐이었다.
그녀는 아직 이 세상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끈질김은 그 판관이 결국 정의를 실행해 주리라는 믿음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아야겠다.
우리들 이 세상에서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욕심의 마지막이 어디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자신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불행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우리는 아직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과부의 지경에 다다르지 않았기에
욕심도 부리고 불행하다고 한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절한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쪼그라든다.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기에 간절함에 간절함을 담아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자신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이 세상의 물질에 매달릴 수 없을 것이며,
누구를 용서하지 못할 것인가, 자신의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 만약 당신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숨겨진 그 신에게만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의 복음을 종말의 상황을 암시하시며 말씀하고 계심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겠다.
우리들의 마지막 순간.
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마 지금 내가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가 그 순간을 맞이할 확율이 제일 크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