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3 주일
이번 주간은 수많은 갈등의 안개 속을 걸어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그 갈등의 시작은 한 친구의 메일로 시작되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적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 속에는 자신이 의정부교구를 택했다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적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글이 나에게 마음의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의정부 교구를 택했다. 처음에 신학교를 지원했던 그 의지로, 그리고 유학을 받아들였던 그 의지로, 나는 의정부라는 교구의 새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나의 마음을 정해 놓고 있었지만, 그 친구의 이 짧은 몇 자의 그들이 나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놓았다. 나는 다시 나에게 물어야만 했다.
"과연 무엇이 나의 올바른 선택인가?"
한국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공간 속에서 홀로이 한국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판단의 근거가 빈약했기 때문에. 선택의 결정을 내리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의 갈등이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에게 반문을 했다.
"넌 네 자신의 의지도 잃어버린 것이냐, 신학교를 들어가고자 결정할 수 있었던 그 단호함을?"
내 자신이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졌다. 자꾸만 이 질문앞에서 작아져야만 하는 내 자신을 보아야 했다. 주님 앞에 앉아 있는 내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매일 하는 기도조차도 너무나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결국 무미건조함의 시간이 내 무거운 발을 다시 움직여 주는 힘이 되었다. 주님 앞에 앉아 있던 어느 순간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
그 순간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금 주님이 나에게 다시 바다로 나가기를 바라시는구나. 나는 지금 밤을 새며 헛손질을 하고 있는 베드로와 같구나. 주님은 나에게 내 길이 무엇인지 새로이 말씀해 주심을 말이다. 나에게는 이미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미 주님은 나의 길을 결정해 주셨는데, 나는 배 오른편이 아닌 배 왼편에 그물을 던지며 헛손질로 밤을 새고 있는 것이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방향이 아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으려 했으니 마음의 갈등은 심해졌지만 답은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마음은 이 묵상의 시간 끝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무거움이 아닌 조금은 가벼움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글을 썼다.
"우리 자신이 찾은 자리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하자."
이 짧은 해답을 찾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돌아 왔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기쁘기도 했다. 내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지금은 조금이나마 멀리 보게 된 것 같아서.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이런 일주일의 내 마음을 너무나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확실치 않으며 인간의 의도는 변덕스럽습니다. 썩어 없어질 육체는 영혼을 내리누르고, 이 세상살이는 온갖 생각을 일으키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일을 짐작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며,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을 찾아내기도 힘든 일입니다. 하물며 누가 하늘에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지 않고, 당신께서 하늘에서부터 보내시는 성령을 받지 않고, 누가 당신의 의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신만의 의지로 내 길을 정했다면 아마 나는 후일 내 결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자신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인내와 지혜로움을 마음에 담고 있다. 훗날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아쉬움을 내가 떠올린다면 나는 다시 인내와 지혜로움을 찾아 꺼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을 떠나있을 때 더 큰 은총의 기회를 받곤 한다. 그 은총은 내가 주님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받았던 것이 얼마나 행복이었던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주어진다. 내가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갈등 속에서 고립되어 있던 시간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더 가까이 주님께 다가가 있었듯이 말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집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나는 망대를 짓다가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뻔했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 갈팡질팡하다가 친구 따라 강남을 갔다면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고 가던 길을 되돌아 가야 했을테니까. 주님은 많은 시간 당신의 해답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내 놓으신다. 내 것을 다 포기하고 나면 그 해답도 함께 주어지는 그런 질문들 말이다.
우리들 삶에 지치고 어려움이 다가오면 내 것을 움켜쥐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인간의 본성을 버릴 때 우리는 마음의 갈등도 버릴 수 있다.
행복이구나, 버림은...우리에게 가능한 일이구나, 때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