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는 갑자기 입고 나갈 옷이 없다고 옷을 다려 달라고 징징대고,
화분에 꽃이 말라죽었다며 같이 일하고 들어온 아내나 남편은 책임을 상대방이 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작은 아이는 방을 가득 어질러놓은 채 과제물을 혼자 다 어떻게 하느냐고 도움을 청하는데
건성으로 말을 들어주며 가방에 넣어온 일거리에 대한 걱정을 하는 동안
부엌에선 냄비에 올려놓은 생선이 바닥까지 타고 말았을 때,
슬기로운 사람은 멈출 때가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채야 한다.
삶의 속도에서 내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게 휴식이나 여행일 수도 있고,
기도일 수도 있고, 달리기일 수도 있고,
명상 수련에 참가하는 것이거나 삼림욕일 수도 있다.
고요한 시간 속에 자기를 놓아두어야 한다.
그게 몇 시간이어도 좋고 며칠, 아니 때론 몇 년일 수도 있다.
그건 현실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
달아나는 것이라기보다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야 고요해진다.
고요해지면 다시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진다.
마음이 밝아지고 맑게 가라 앉아야 자기 마음의 선한 바탕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 선한 바탕으로 돌아와야 다시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와지고 부드러워진다.
얼굴이 편한 모습을 되찾고 눈매가 평화로워진다.
그래야 다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본래의 모습대로 말하고 일 할 수 있게 된다.
자기 마음이 바탕을 잃은 채 말하고 행동하면 자기도 모르게 곁에 있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은 나 때문에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수없이 본래의 내 모습, 내 선한 마음의 바탕, 자성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