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대림 1 주
오늘부터 교회의 새해가 시작이다.
작년에는 내 첫 사랑에 대한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올해에는 그 추억이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음에 간직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한번 마음에 고이 간직했던 사랑을 발설해 버리면,
왠지 그 때부터 내가 간직했던 사랑에 때가 묻어 가는 것을 느낀다.
크리스찬이란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동안을 예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0년이란 긴 시간동안을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수많은 무시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사랑을 말이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연인들에 대한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시며 한마디를 던지셨다.
당신이 돌아올 날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 깨어 기다리라고....만약 그 때 깨어 있지 않으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얼마나 냉정한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차가운 말을 하고 떠날 수 있다니...
우리는 그렇게 냉정한 말을 하고 떠난 분을 향해 무제한으로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런 기다림은 불가능하다.
엄숙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머니 곁에서 미사를 하는 6살짜리 아이처럼
우리는 늘 언제 어머니가 잔소리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그 긴 여정에서 주님을 떠나고,
때로는 모른 척 하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알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긴 기다림 속에서 우리들은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오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사고의 흐름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하느님의 아들.
그 분이 정작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그 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들이 기다리던 분들과 전혀 다른 존재로 그 분이 오셨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을 구원할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 우리들의 기다림도 이렇지 않을까?
교회 안의 많은 예언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아주 무섭게 이야기한다.
그 날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무서운 혐오감으로 그들의 삶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가게 한다.
이 세상은 지옥벌과 같은 재앙으로 가득하고,
그 속에서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정말 하느님이 그렇게 잔인한 분인가를 우리는 다시 묵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십자가를 지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한 분이 이렇게 무서운 형상으로 오실 수 있는 것일까?
다정한 사랑이 무서운 폭군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그 분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하러 온 사람을 모두 공평하게 대해 주시는 분이 아니신가 말이다.
단지 하나의 달란트 만을 벌어 와도 만족해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신가 말이다.
인간들의 가장 큰 죄는 하느님을 자신의 사고 틀 안에 가두어 두려는 죄가 아닐까?
신을 인간의 범주로 끌어내리는 죄로 인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믿음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우리는 기다림의 여정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기다림의 여정이 행복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진정 주님께 대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는 사람이리라.
주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언제 올지 알지 못하니, 늘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