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당신이 주로 활동하셨던 갈릴레아 지방을 조금 떠나 북쪽으로 여행을 하고 계신다.
그러다 이방인의 신상이 있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 다다르자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다양한 모양새를 답한다.
그리고 이 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신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드린다.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짧은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타인들의 생각을 물으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과 지냈던 많은 날들을 떠 올렸을 것이다.
처음 만난 분이 자신의 행적을 모두 알고 계셨던 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가나의 기적, 물위를 걸으신 기적, 아름다운 말씀들, 적은 양의 빵으로 사람들을 배불리신 일, 간음한 여인을 구해 주신 일 등...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하는 소리를 그들은 들었다.
"저 사람은 우리가 다 아는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요,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며, 갈릴레아 출생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능력을 받았단 말인가? 혹시 베엘제불의 힘을 빌린 것은 아닐까?"
이런 추측들은 예수님을 다른 위대한 예언자나 판관이나 율법학자에 비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어떤 대답도 예수님의 본 모습을 이야기 해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력을 발휘해 예수님을 찬양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스스로 흐뭇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찬양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사고의 쾌락은 쉽게 깨어진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자신들의 본 모습을 보게 만드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이 분은 어떤 존재인가?
그럼 이 분을 모시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왜 이 분은 나를 제자로 뽑으셨을까?
이 짧은 질문은 결국 "나"라는 한 단어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우리는 예수님이 물으시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성서는 베드로가 금방 나서서 예수님의 질문에 답을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 대답은 결코 즉각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낸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전 존재를 담고 있는 대답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의 피조물로 여기고 있다.
자신은 창조된 존재이고, 그 분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고백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지혜는 인간이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낮아지고, 겸손함을 자처하는 모습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생각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입을 열어 주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응송인가?
하느님의 아들이 질문하시고,
성령이 대답하신다.
우리 모두도 이런 은총 안에 자신의 답변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한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과연 나는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러다 이방인의 신상이 있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 다다르자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다양한 모양새를 답한다.
그리고 이 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신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드린다.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짧은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타인들의 생각을 물으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과 지냈던 많은 날들을 떠 올렸을 것이다.
처음 만난 분이 자신의 행적을 모두 알고 계셨던 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가나의 기적, 물위를 걸으신 기적, 아름다운 말씀들, 적은 양의 빵으로 사람들을 배불리신 일, 간음한 여인을 구해 주신 일 등...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하는 소리를 그들은 들었다.
"저 사람은 우리가 다 아는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요,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며, 갈릴레아 출생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능력을 받았단 말인가? 혹시 베엘제불의 힘을 빌린 것은 아닐까?"
이런 추측들은 예수님을 다른 위대한 예언자나 판관이나 율법학자에 비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어떤 대답도 예수님의 본 모습을 이야기 해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력을 발휘해 예수님을 찬양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스스로 흐뭇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찬양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사고의 쾌락은 쉽게 깨어진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자신들의 본 모습을 보게 만드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이 분은 어떤 존재인가?
그럼 이 분을 모시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왜 이 분은 나를 제자로 뽑으셨을까?
이 짧은 질문은 결국 "나"라는 한 단어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우리는 예수님이 물으시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성서는 베드로가 금방 나서서 예수님의 질문에 답을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 대답은 결코 즉각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낸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전 존재를 담고 있는 대답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의 피조물로 여기고 있다.
자신은 창조된 존재이고, 그 분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고백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지혜는 인간이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낮아지고, 겸손함을 자처하는 모습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능력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생각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입을 열어 주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응송인가?
하느님의 아들이 질문하시고,
성령이 대답하신다.
우리 모두도 이런 은총 안에 자신의 답변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한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과연 나는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