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낫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계명이 사랑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이 실천 불가능한 사랑이다.
원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사랑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이 요구가 인간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매번 예수님의 요구에 의문으로만 응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님의 요구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주님은 나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 주신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낫겠습니까!
바오로의 이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뒤흔든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실천하다 스스로의 고뇌에 싸일망정,
실천 한번 해 보지 않고 때늦은 후회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긴다.
우리들, 늘 부족한 존재이지만
주님께 의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주님은 그렇게 부족한 우리에게 사랑을 명령하기만 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협조자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분을 함께 보내주시겠다고 하신다.
사랑을 하기 위해 우선 우리들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하겠다.
성령을 받아들일 것이냐?
주님의 사랑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내가 하는 사랑이 아니라,
성령이 사랑하는 만큼 내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