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성자 중에 싱(singh)이라는 분이 계시다.
싱이 어느 추운 겨울 날 길을 가고 있었다.
그가 산을 넘어 가고 있을 때 그는 동지를 한명 만나 함께 걷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 추위를 이겨 나갔다.
그런데 한참을 걸었을 때 그들은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게 되었다.
싱은 동료에게 저 사람을 함께 엎고 산을 넘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살아남을지 모르는 판국에 노인을 살릴 힘이 없다며 혼자 떠나 버렸다.
싱은 쓰러져 있는 노인을 등에 엎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싱의 등에서 더운 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열기로 인해 추위에 쓰러졌던 노인도 따스해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의 온기에 의지를 하며 걷던 싱은 저 멀리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다.
싱은 조금만 더 가면 노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런데 마을을 들어서는 입구에 한 사람이 쓰러져 동사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바로 그 노인을 모른 척 하고 혼자 떠난 그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요즘 새로운 교황님의 선출과 함께 신문지상이나 티브이에서 요한 바오로 교황님을 자주 뵙게 된다.
사람들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현대 세상의 윤리에 대해 어떠한 지침도 세우지 않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비판을 읽으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지침을 세운다고 이 세상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하라 말라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누군가 그래서 이런 글을 썼다.
"교황은 윤리의 발명가가 아니다.
교황은 복음을 수호하는 교회의 최고 어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들을 우리가 착실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리의 지침이 아니라,
그 착실한 삶의 모범인 것이다.
그 삶의 모범을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은 당신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살면 당신을 통해서 우리가 아버지께 갈 수 있다고 하신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길을 잃은 것 처럼 느껴질 때,
그 방향을 예수님에게 맞춘다면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얼마나 많은 순간 방황을 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길을 따를 것인지, 내가 원하는 길을 걸을 것인지...
많은 순간 제 자신의 길을 택해 당신을 아프게 했던 저.
매 순간 당신은 그런 저를 다시 당신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당신을 통해 아버지의 나라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늘 인도하소서.
죄 많은 죄인일지라도...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