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게 하소서...

김재화

2005. 4. 17. 오전 4:24:32

오늘 우연히 책을 읽으려고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서품을 받던 날,

 

실비아 수녀님이 나에게 보내신 글이다.

 

잘 간직하려고 했던 글이었는데...

 

수녀님이 나에게 바랬던 사제상을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떠 올려 본다.

 

 

듣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이웃의 말과 행동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하루의 작은 여정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이의 말과 행동을
건성으로 들어 치우거나
귀찮아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가로막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웃을 잘 듣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임을
내가 성숙하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이기심의 포로가 되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적당히 듣고
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무심함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못 들은 척
귀 막아 버리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으니까",

 "잘 몰랐으니까" 하며 핑계를 둘러대는

적당한 편린주의, 얄미운 합리주의를 견책하여 주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과 사건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앉아야 할 자리에 앉고
서야 할 자리에 서고
울어야 할 때에 울고
웃어야 할 때에 웃을 수 있는
민감하게 듣고 순응하는
삶의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자신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를 잘 듣는 사람만이
남을 잘 들을 수 있음을
당신을 잘 들을 수 있음을
거듭 깨치게 하소서.

 

선한 것을 지향하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침묵과 고독 속에
자신을
조용히 숨길 줄도 알게 하소서.

 

나는 두 귀를 가졌지만
형편없는 귀머거리임을 몰랐습니다.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만 많이 했음을 용서하소서.

 

들으려는 노력도 아니하면서
당신과 이웃과 세상에 대해 멋대로

의심하고 불평했음을 지금은 뉘우칩니다.

 

매일 매일의 내 작은 여정에서
내 생애의 큰 여정에서 잘 듣고 잘 말하는 이가 되도록
밝고 큰 귀와 입을 갖고 싶습니다.

 

말소리만 커지는
현대의 소음과
언어의 공해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겸손히 듣고 또 듣는
들어서 지혜를 깨치는
삶의 구도자 되게 하소서.

 

아멘.

 

 

이 번 주일은 성소주일이다.

 

이 곳에는 없는 한국에만 유일한 날이 아닐까 한다.

 

주님께로 향하는 많은 사제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나 자신도...

댓글 7

  • 2005년 4월 17일 오후 8:43

    감사 합니다.

  • 2026년 3월 6일 오후 2:00

    신부님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이웃을 잘듣고 주어진 상황과 사건을 잘 듣고 나를 잘듣는 사람이 되기를 저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2026년 3월 6일 오후 2:01

    민감하게 듣고 순응하는 삶의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아멘.

  • 2026년 3월 6일 오후 4:08

    잘듣고 잘말하는이가 되도록 밝고 큰 귀와 입을 갖고 싶습니다. 그말씀이 천둥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잘듣고 잘말하며 겸손하게 살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6년 3월 7일 오전 7:56

    신부니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이가 남의 말도 잘들을 수 있음을 들으려하기 보다 말 하가를 앞세웠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6년 3월 7일 오후 12:45

    나를 잘듣는 사람만이 남을 잘들을수 있고 주님의 말씀을 잘듣고 이웃과 잘 지낼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남의 말을 잘듣지 못하고 내 맘에 드는 말만 들으려 했던 자신을 반성합니다.

  • 2026년 3월 25일 오후 2:45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 간직하셨다가 다시 꺼내보시고 우리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묵상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잘 듣고 잘 보고 마음에 새겨 잘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