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책을 읽으려고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서품을 받던 날,
실비아 수녀님이 나에게 보내신 글이다.
잘 간직하려고 했던 글이었는데...
수녀님이 나에게 바랬던 사제상을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떠 올려 본다.
듣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이웃의 말과 행동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하루의 작은 여정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이의 말과 행동을
건성으로 들어 치우거나
귀찮아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가로막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웃을 잘 듣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임을
내가 성숙하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이기심의 포로가 되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적당히 듣고
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무심함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못 들은 척
귀 막아 버리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으니까",
"잘 몰랐으니까" 하며 핑계를 둘러대는
적당한 편린주의, 얄미운 합리주의를 견책하여 주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과 사건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앉아야 할 자리에 앉고
서야 할 자리에 서고
울어야 할 때에 울고
웃어야 할 때에 웃을 수 있는
민감하게 듣고 순응하는
삶의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자신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를 잘 듣는 사람만이
남을 잘 들을 수 있음을
당신을 잘 들을 수 있음을
거듭 깨치게 하소서.
선한 것을 지향하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침묵과 고독 속에
자신을
조용히 숨길 줄도 알게 하소서.
나는 두 귀를 가졌지만
형편없는 귀머거리임을 몰랐습니다.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만 많이 했음을 용서하소서.
들으려는 노력도 아니하면서
당신과 이웃과 세상에 대해 멋대로
의심하고 불평했음을 지금은 뉘우칩니다.
매일 매일의 내 작은 여정에서
내 생애의 큰 여정에서 잘 듣고 잘 말하는 이가 되도록
밝고 큰 귀와 입을 갖고 싶습니다.
말소리만 커지는
현대의 소음과
언어의 공해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겸손히 듣고 또 듣는
들어서 지혜를 깨치는
삶의 구도자 되게 하소서.
아멘.
이 번 주일은 성소주일이다.
이 곳에는 없는 한국에만 유일한 날이 아닐까 한다.
주님께로 향하는 많은 사제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되새겨 보기를 바란다.
나 자신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