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 9장의 태생소경이야기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아 본 적은 없었다.
사순 기간동안 이어지는 예수님의 여정들.
오늘은 그 중에서 마음이 닫힌 사람들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하시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은 늘 작은 부분, 사람들이 돌보지 못하는 곳 까지 마음을 쓰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사시던 때나, 지금이나 그렇듯이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어느 곳이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무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무리는 쉽게 사람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 뿐더러,
자신들이 쌓아 놓은 공든 탑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협 받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쌓아 놓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무리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을 밟고 서야 한다.
태생 소경은 그렇게 그런 사람들에게 밟힌 사람이다.
그는 소경으로 태어나서 사람들에게 거지로서 인식을 받으며 살아야 했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사람이었고,
이제는 소경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는 죄를 뒤집어 쓰고 태어난 사람으로 밖에 인정받지 못한다.
그는 죄의식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자로 서 있다.
이런 사건들은 그 당시에만 존재 했던 것이 아님을 난 어제 내 모습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때로 대의를 내세우며 작은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렇게 큰 것 만을 바라보며 전진하는 우리들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어제 있었던 일들은 나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뱉은 한마디가 지금 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단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는 행동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분이 받았을 상처들...
어느 공동체에나 이렇게 태생소경은 존재할 것이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커다란 목적 때문에 남 몰래 상처 입어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결국 회당에서 쫓겨난 소경처럼 공동체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자 한다.
예수님은 그를 실로암이라는 우물로 보내셨음을 보아야 하겠다.
그 뜻은 그가 이 공동체에 파견된 자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모든 소경과 같은 사람은 그 공동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 중에 누구도 공동체로부터 상처 받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모아 들이셨던 분이시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잘 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렇게 버림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버림 받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버림받는 자가 생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내가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잘 돌아보고 끌어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