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에 성변화를 하신 예수님을 뵈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수난을 받아들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첫 여정으로 사마리아 여인을 우리에게 보내신다.
사마리아 여인. 우리는 그녀가 어떤 여인인지 오늘 복음을 근거로 알 수 있다. 그녀는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받는 여인이었다. 스스로 공동체를 찾아가 자신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알아 맞춘 사람을 만났다고 이야기했을 때 모든 공동체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행실은 공동체에 막급한 피혜를 주었던 것이다. 5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하고 있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겉모습만을 보고 그녀를 냉대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 강인해 져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편이라는 존재에 의지를 했어야 했다. 5명의 남편이 상징하는 것은 얼마나 그녀가 허약한 존재인지를 드려내 준다. 공동체에 강인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재로는 "홀로서기" 조차 할 수 없는 존재. 그런 나약한 존재를 그녀는 상징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남들이 물을 뜨러 나오는 아침 시간이 아닌 남들이 더워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인 정오가 되어서야 우물에 물을 뜨러 나와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처음 만나는 남자를 피할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 문화의 관습에 도전을 한다. 그녀는 처음 만난 그 남자와 말씨름을 할 정도로 남자 즉 관습의 중심에 도전을 던지고 있다. 그녀가 내 던지는 말들을 잘 살펴보면 그녀가 얼마나 도전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게 된다.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녀는 속이 베베 꼬인 사람처럼 예수님의 말을 하나하나 걸고넘어진다.
그런 그녀가 한 순간 자신의 자세를 바꾼다. 예수님의 한 마디에.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해주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한 여인에게 생명의 물이 무엇인지, 지금 그녀가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강인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를 준 공동체와의 화해였다. 그녀가 입은 과거의 상처에 매달려 점점 더 스스로를 옮아매었던 그녀를 예수님은 공동체 안으로 넣어주고 싶으셨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절은 우리에게 이를 확인시켜 준다. 이미 41절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음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마지막 한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공동체가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이 말씀은 확실히 들려주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어 있음을 이 구절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배드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이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이 바라는 예배는 단지 송아지를 잡은 피와 비둘기를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이런 참다운 예배가 매일 매일 이루어지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준비하시는 수난의 길은 그냥 십자가를 향한 맹목적인 여정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당신의 길에 참여시킨다. 그리하여 진정한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손수 당신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다.
혹시 우리들 주위에 강인한 척하며, 스스로의 장벽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또 다른 사마리아 여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모범을 보여야 하겠다.
주님, 저희가 당신의 모범을 따를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