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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받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받을 때마다 괴로운 것이 있습니다.
몸으로 일한답시고 가끔 옆지기가 물어봅니다.
" 오늘 뭐 먹고 싶어 ? "
" 아니~ 그냥 주는대로 먹는거지 뭐 먹고 싶은게 갑자기 어디 있어 ! "
"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이 있을거 아냐 ! "
" 아휴~ 그저 안 굶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행복하죠~~"
" 아~ 진짜~~ 나 짜증나!! "
" 아니 왜 그래 또~~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뭐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한게 있기나 해 ? "
그렇습니다. 특별히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옆지기가 물으면
바로바로 뭐 먹고 싶다고 이야기가 안나옵니다. 매번 생각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굶고 사는 것이 아니니 더욱 그렇죠. 먹고 싶은 것이 많았던 때가 있긴 있었습니다.
가입교 훈련시절 1월과 2월의 차가운 진해 바닷바람 맞으며 훈련할 때는 먹고 싶었던게 많았습니다.
고딩시절 많이 먹었던 라면도 그리웠고, 팅팅 굵어진 라면발에 짜장 소스 얹은 토요일 점심 먹을 땐
좋아하지 않던 짜장면도 그렇게 먹고 싶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갇혀 지낸다는 생각에 탈출하고픈
욕망과 육체적 고통이 어울러져 배고팠고, 추운데도 엄청 졸렸더랬습니다.
이제는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되었네요. 86년 1월과 2월의 일이니 꽤 됐네요.
그 후로 먹는 것에 대한 감정이 새로워졌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사실 많아졌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 말입니다.
여름에 똥파리가 알을 깔만큼 맛있었던 청국장..
어머니의 그 손맛을 재현했던 청국장은 그 이후 한번도 먹어보질 못했습니다.
병으로 누워계실 때에도 가끔 말씀드렸었는데, 일어나면 만들어 주신다 하면서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죠.
그러나, 아쉬움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그 맛에 대한 향수와 추억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음식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많지만 정말 최고였던 것은 겉절이입니다.
시골에서 살았으니 집에서 가까운 텃밭에서 가져온 어린 배추로 쓱쓱 만들어 주셨던 겉절이..
모든 사람이 칭찬했던 맛이었습니다. 가끔 형수님들이나 옆지기도 생각 많이 난다고 말을 합니다.
지난 주말 옆지기와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배추를 사러 댕겨왔습니다.
고추가루가 이민 올 때 가져온 것이 색깔도 변하고 맛도 이상해서 이번에 한국의 처제한테 공수 받은
것으로 담그려고 사진에 나온 저곳에서 장을 봤습니다. 때마침 배추값도 싸고 그래서 무리해서 두 박스나
샀습니다. 평상시 한 박스면 충분했는데, 간만에 담는 김치라 열심히 해보겠다며 두 박스를 샀죠.
사실 한국의 여인네들이 거의 마찬가지겠지만 결혼 전까지 직장 다닌다고 음식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김치를 어떻게 담글 줄도 몰랐던 그녀는 이제 이곳에서 요리 잘하는 여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는 형님, 누님들한테 날마다 좋겠다며 놀림 반, 부러움 반 섞인 말을 듣습니다.
옆지기가 음식을 잘 한다고 하면 한국의 처제가 웃습니다만 그래도 정말 많이 늘었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살 줄은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집사람도 어머니의 김치를 먹어봐서 그런지 어머니의 맛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김치는 거의 어머니의 수준인 것 같고, 겉절이는 가끔 저를 환상 속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딱히 무엇을 먹고 싶다고 말하기 힘이 듭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어머니표 김치가 밥상에 있는데 굳이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는거죠.
김치 이야기를 하니 어머님이 많이 보고 싶네요. 징허게 고생만 하셨는데, 오늘도 평안하셨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