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보상을 바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면서 자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도시락은 무거운 짐이 되었고, 식어버린 도시락을 먹는 것은 보통의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은 그런 도시락도 가지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점심때면 수돗가에 가서 물을 마시곤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급식을 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급식으로 나오는 점심은 따뜻하고, 맛이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것이 ‘무상급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맛있는 점심을 무상으로 먹는 것은 젊은 인재를 키우려는 사회적인 투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학 등록금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등록금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등록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엄청나게 비싼 미국식 등록금입니다. 미국은 대학의 교육은 본인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주립대학의 경우는 등록금 부담이 적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편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척 저렴하거나 거의 무상인 유럽식 등록금입니다. 유럽은 ‘대학의 교육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유럽의 대학들은 가정에 부담을 거의 주지 않도록 제도화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싸다고 합니다. 가장 비싼 미국 다음으로 많은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을 대출받으면 나중에 억대에 가까운 돈을 이자를 포함해서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직장을 다녀도 대출받은 등록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사회생활을 하게 될 거라 합니다.
대학의 등록금은 사회적인 합의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킬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대학의 등록금을 사랑의 차원으로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투자인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성취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럽의 대학 등록금처럼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저렴한, 거의 무상인 대학 등록금 제도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개인의 발전과 성취를 위한 대학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대학의 등록금은 더욱 인상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 공동체에 대해서 관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과 전통을 따라야 할 의무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정입니다. 이것은 초기 유대인 공동체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정은 교회 발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방인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간결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보상을 바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면서 자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도시락은 무거운 짐이 되었고, 식어버린 도시락을 먹는 것은 보통의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은 그런 도시락도 가지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점심때면 수돗가에 가서 물을 마시곤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급식을 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급식으로 나오는 점심은 따뜻하고, 맛이 있을 것입니다. 한동안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던 것이 ‘무상급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맛있는 점심을 무상으로 먹는 것은 젊은 인재를 키우려는 사회적인 투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학 등록금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등록금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등록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엄청나게 비싼 미국식 등록금입니다. 미국은 대학의 교육은 본인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주립대학의 경우는 등록금 부담이 적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편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척 저렴하거나 거의 무상인 유럽식 등록금입니다. 유럽은 ‘대학의 교육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유럽의 대학들은 가정에 부담을 거의 주지 않도록 제도화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싸다고 합니다. 가장 비싼 미국 다음으로 많은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이 대학 등록금을 대출받으면 나중에 억대에 가까운 돈을 이자를 포함해서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직장을 다녀도 대출받은 등록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을 지니고 사회생활을 하게 될 거라 합니다.
대학의 등록금은 사회적인 합의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킬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대학의 등록금을 사랑의 차원으로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투자인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성취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럽의 대학 등록금처럼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저렴한, 거의 무상인 대학 등록금 제도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개인의 발전과 성취를 위한 대학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대학의 등록금은 더욱 인상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 공동체에 대해서 관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과 전통을 따라야 할 의무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정입니다. 이것은 초기 유대인 공동체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정은 교회 발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방인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간결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