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목요일

2011. 2. 17. 오후 6:35:32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외국의 어느 시골 성당에서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당의 할머니 한분이 개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할머니는 개에게도 세례명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본당신부에게 몇 번 말을 했지만 거절당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재산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을 찾아가서 손가락 5개를 보이면서 개에게 세례를 주면 주겠다고 했습니다. 본당신부님은 50만이냐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500만이냐고 했습니다. 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5000만이냐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5억이냐고 했습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부님은 눈을 딱 감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소문이 주교님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주교님은 신부님을 불렀고, 신부님은 크게 꾸중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교님께 갔습니다. 주교님께서 귓속말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개 견진도 받는지 할머니에게 물어 보게나!”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당에서도, 신앙에서도, 일상의 삶에서도 돈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작년에는 본당 교우 중에서 혼배성사를 받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20여명의 젊은이들이 혼인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고, 신앙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혼인성사를 하면서 꼭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반지의 교환’입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시로 드리는 이 반지를 받아주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줍니다. 신부도 신랑에게 같은 말을 하면서 신랑에게 반지를 끼워 줍니다. 반지는 묵주반지 인 경우도 있고, 금반지 인 경우도 있고, 다이아 반지인 경우도 있습니다. 반지의 종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반지를 주고받는 배우자들의 사랑과 신의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반지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

지난 2월 8일에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사제들은 서품식을 받기 전에 3가지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는 30일 피정을 함께 하였기 때문에 ‘독신서약, 신앙고백, 순명서약’예식 미사에 함께 하였습니다. 20년 전에 저도 그와 같은 서약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이번에 서품을 받는 신부님들의 서약예식 미사를 함께 하면서 다시금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독신서약입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사는 것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사는 것은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것도 하느님을 위한 일이고, 그 일도 무척 소중하고, 어려운 삶입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사는 이유는 자녀를 위해서 쓰는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사는 이유는 아내를 위해서 쓰는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버는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쓰라는 뜻입니다. 독신으로 살면서 본인을 위해서 산다면 그것은 참다운 독신서약이 아닙니다. 독신으로 살면서 혼인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보다 충실하게 살지 못한다면 독신서약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혼자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온전하게 투신하는 것이 진정한 독신서약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고백입니다. ‘니케아 신경’을 읽으면서 교회가 지켜온 신앙을 믿고, 지켜나갈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서적을 자주 읽어야 합니다. 영적인 보물들을 찾아야 합니다. 사제로 살면서 세상의 것들을 읽고, 배우는 시간만큼 교회의 가르침을 찾고 배우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교황님께서 반포하시는 회칙들, 교회 서적들, 평화방송과 같은 것들을 자주 접해야 합니다. 과연 드라마나 영화는 다시보기를 하고, 뮤지컬은 예약을 하면서 보면서 나는 나의 신앙을 위해서 그렇게 충실한지 돌아보았습니다. 사제서품을 받는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혼인성사를 받았다고 화목한 가정, 사랑이 넘쳐나는 가정이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세 번째는 순명서약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교구장의 사목방침을 입으로만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순명이 아닙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전해야 합니다. 교구장의 사목방침은 본당의 구체적인 사목현장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말뿐인 순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만함 때문에, 자신의 뜻과 다르기 때문에 진정으로 순명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쁨과 영광의 잔은 즐거이 마시면서도, 고난과 역경의 잔은 외면하려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계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여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지개의 색깔이 아닙니다. 무지개의 성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사제서품을 받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사제로서의 권한과 책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제서품의 교회의 중요한 예식이고, 오랜 전통을 가진 예식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제서품을 받은 이후의 삶입니다. 독신서약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신앙고백을 온 몸과 마음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나의 뜻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순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순명해야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맡긴다고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삶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고난의 잔, 십자가, 나눔, 희생을 통한 신앙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야기 하십니다. 너의 신앙고백을 너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너의 신앙고백은 참된 신앙고백이 아니다.

새로운 사제들이 돌아오는 화요일에 새로운 임지로 부임을 합니다. 사제로 처음 본당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새로운 사제들이 주님의 제자로서 충실한 신앙고백을 하도록, 독신의 의미를 제대로 알도록, 하느님의 뜻에 기꺼운 마음으로 순명하도록 기도 중에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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