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

2010. 7. 25. 오전 4:42:38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휴가철에 가고 싶은 곳을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해안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교통수단은 73%가 자가용을 이용하겠다고 합니다. 올해 휴가 장소는 동해안, 교통수단은 자동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휴가철에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휴가를 가던 때를 생각합니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청량리에서 동해가는 기차를 타고 갔었습니다. 좌석은 있었지만 늦게 타면 자기 좌석에 앉기도 힘들었고, 바닥에 앉아 밤을 새워 가는 것이 낭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휴가를 갔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민박을 얻고, 코펠에 밥을 하고, 통조림 따서 찌개를 만들고, 바닷가 모래밭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옆방에 있는 여학생들과 게임도 하고, 이것이 예전의 휴가였습니다.

요즘의 휴가는 예전에 비하면 품격이 훨씬 있어 보입니다. 바닷가 근처의 콘도나 펜션을 미리 예약합니다. 취사도구는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깨끗하고 세련된 마트가 바닷가 근처에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은 그때그때 사서 먹으면 됩니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쉬운 휴가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휴가가 예전의 휴가보다 더 설레고, 행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한 시설이 행복의 절대 가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발전으로 지난 수십 년간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자살하는 사람, 이혼하는 사람,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교도소에 가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개발 공사를 하면서 낡은 것들을 철거하고 그 위에 새로운 아파트를 짓듯이, 우리는 어쩌면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들을 너무나 쉽게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 이사 오면 동네 사람들에게 떡을 돌리던 모습, 아이들이 함께 놀던 마당, 옆집에 누가 돌아가시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일을 거들어 주던 모습’과 같은 것들도 발전의 그늘에 가려서 이제는 추억의 한 장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강남몽’이라는 소설을 발간하였습니다. 1995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주된 테마로 강남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한 어머니가 딸에게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어머니는 변두리의 작은 집에서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서 집에서 쉬고 있었고, 엄마는 파출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딸은 삼풍백화점에서 아이들의 옷을 파는 점원이었습니다.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강남의 부잣집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힘들고 어려운 사정이 있단다. 어떤 집은 함께 살던 사람이 아파트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집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헤어지기도 하고, 집은 큰데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것을 볼 수도 없다.’ 돈이 많아서 좋은 집을 사서 살지만 그것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참된 행복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제 1독서는 아브라함과 하느님의 대화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타락하였으며, 악행을 일삼고, 양심과 인권이 짓밟히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런 소돔과 고모라를 징벌하려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저 사람 중에 의인이 50명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용서해주시렵니까! 아니 45명, 아니 30명, 아니 20명, 아니 10명만 되어도 용서해주시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청을 들어주시고자 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시고 들어주시려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돈에, 명예에, 권력에, 빽에, 폭력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소리에 매달려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도”라고 부릅니다. 기도는 이론과, 학습으로 배워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겸손함과 체험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2가지의 체험이 있습니다. 한번은 새벽 2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병원엘 갔었고, 의사는 95%는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환자의 남편과 가족들의 간절한 눈망울을 볼 수 있었고,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하느님 이 어머니가 부디 나아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 뒤에 그 자매는 기적적으로 병세가 호전되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패혈증에 걸린 남자분이였습니다. 피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습니다. 저는 또 때를 썼습니다. 하느님 이분 당신의 사랑으로 돌보아 주십시오. 환자분은 2시간 동안 저에게 고백성사를 보았고, 저는 그 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몇 주일 후 가족들과 함께 주일 미사에 참례한 그 형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름이 지나면 입시철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전국의 사찰과, 교회, 성당에는 많은 분들이 치성과 정성과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자신들이 믿는 절대자에게 매달리고 청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입시철이 끝나면 그 많은 사람들이 볼일 다본 것처럼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사찰과 교회 그리고 성당은 피서 끝난 바닷가처럼 썰렁함을 봅니다. 매달림과 청원의 기도가 있다면, 감사와 찬미의 기도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봅니다.

무엇이 참다운 기도의 태도인가! 저는 아브라함 링컨의 다음 말이 참다운 기도의 태도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두 팀 모두 성호경을 그으며 게임에 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다운 기도는 하느님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리라, 내가 하느님 편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때로 외롭고 힘든 골고타 언덕길이라도 주님 가신 그 길을 기쁨으로 따라나서는 것이 참다운 기도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2

  • 2010년 7월 25일 오전 5:51

    아멘!

  • 2010년 7월 25일 오후 1:34

    매달림과 청원의 기도가 있다면 감사의 기도도 있어야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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