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상에는 많은 직업들이 있습니다. 자동차에 십만 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한 것처럼 사회가 발전할수록 직업의 종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직업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린이 집 교사, 요양원 도움이, 가정 복지사, 간병인’과 같은 직업은 최근에 수요가 증가하는 직업입니다. 저는 지금 사제의 길을 가고 있지만 어릴 때는 ‘선생님이나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저를 가르치시던 담임선생님이 좋았었고, 군인들의 제복이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제의 길을 가는 지금 어릴 때 가졌던 희망이 어느 정도 이루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복은 아니지만 제의를 입고 신자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나중에 원하는 희망을 물어보면 ‘가수’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대통령, 의사, 판사와 같은 희망을 이야기 했었는데 아이들도 요즘은 부모님들께서 원하는 희망이 아니라, 본인들이 원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성서에는 여러 가지 직업이 등장합니다. ‘농부, 유목민, 사냥꾼, 왕, 군인, 율법학자, 사제, 판관, 예언자’ 와 같은 직업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구원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인공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악역을 맡았고, 어떤 이들은 조연을 맡아서 신앙의 역사를 오늘까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서에 나오는 여러 직책 중에 예언자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언자는 점쟁이처럼 우리들의 사주를 알려주고, 앞날의 행, 불행을 점치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해주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언자 중에는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예언자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이야기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아모스 예언자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고, 물로 세례를 주었던 세례자 요한도 있습니다. 예언자들에게는 4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언자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부른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많은 업적을 보여 준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언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언자들의 태도입니다. 예언자들은 2가지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도, 거부하는 사람도 모두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요나같은 경우에는 도망가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선포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였습니다. 불의와 갈등과 죄악이 있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심판을 이야기했습니다. 절망과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는 희망과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비록 죄가 크다 할지라도 뉘우치기만 하면 모든 잘못을 용서하는 분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고난과 시련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크고 작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거짓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공동체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억울하게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과 고난은 거름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어떤 특정한 계층의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모두가 예언자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모두는 예언자입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고,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뜻을 삶을 통해서 증언할 때 비록 고난과 시련이 따를지라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을 주고, 씨를 부리는 것은 우리들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인 이정하는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