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

2010. 7. 11. 오전 5:24:39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율법에 충실한 율법학자가 주님께 던진 질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죄인, 이방인, 노예, 병자, 여자’는 이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충실한 사람, 유대인, 건강한 이, 남자’가 이웃으로 여겨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민족, 피부, 신분’이라는 벽을 넘어서 모두가 이웃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방인은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범위를 확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병자, 이방인, 여자’를 이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시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으며 특히 여성들을 구원 사업의 동등한 협력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율법의 해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자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저의 어머니만 해도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여자가 율법공부를 한다는 것은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그것은 같은 여자인 마르타에게도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성서의 말씀을 풀이해 주셨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이 마리아는 주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자캐오와 세리 마태오’를 친구로 대하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그들의 가정까지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느꼈고,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을 위해서 나누겠다고 하였습니다. 세리 마태오는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는 모두 같은 형제요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이런 예수님의 생각을 아름답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의 이웃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같은 고향, 같은 학교, 같은 직장,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이웃으로 여기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잘 하고 있습니다. ‘향우회, 동호회, 친목회, 계모임’과 같은 형태로 하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웃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부끄럽지만 지난 달 구청미사를 다녀오면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차에는 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금천구청 역 앞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 분을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구해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 119에 누군가 연락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린 할 일이 있으니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분이 금천구청 역 앞으로 다시 갔다 왔습니다. 다행히 구급차가 와서 그 여자 분을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고 합니다.

이웃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 귀찮고, 손해를 보기도 하고, 시간을 빼앗기기도 하고,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년 전에 작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부제였던 저는 신학생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취객 한분이 길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냥 가다가는 그 취객이 큰일을 겪을 것 같았습니다. 신학생들과 그분을 모시고 택시를 탔습니다. 다행히 집 주소를 알려주어서 봉천동에서 거여동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취객의 아내와 자녀들은 제게 고맙다고 하면서 어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깨어나면 ‘의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곧 남편은 깨어났고,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왜 자기 집에 낯선 남자가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저는 서둘러서 그 댁을 나오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웃의 범위를 넓힐 때, 때로 오해를 받고,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모욕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말을 하였고, 버려진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버림받은 아이, 장애인, 갈 곳 없는 노인들은 그곳에서 마지막 위로를 받았고, 따뜻한 잠자리를 가지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으로서 사람다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 오웅진 신부님께서도 오랜 동안 재판을 받아야 했고, 결국 무혐의를 받았지만 그동안 받았던 고초와 고생은 말 할 수 없이 컷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 율법서에 쓰인 그분의 계명들과 규정들을 지키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나에게 되갚을 수 있는 사람들도 이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이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이웃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2

  • 2010년 7월 11일 오후 6:22

    아멘!

  • 2010년 7월 11일 오후 10:5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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