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0. 7. 4. 오전 5: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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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화요일에 성당에 새 식구가 왔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토끼가 두 마리 왔었습니다. 토끼들이 너무 잘 자라고, 새끼도 많이 낳아서 먹이를 주기도 힘들고, 기르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토끼들은 작년 가을 아론의 집으로 이사를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닭이 4마리 왔습니다. 닭은 새끼대신에 알을 낳기 때문에 좋은 것 같습니다.토끼처럼 많은 양의 먹이를 먹는 것도 아니고, 기르기는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토끼장을 보면서 허전해 하기에, 이번에는 닭을 기르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작은 알을 낳았습니다. 저 혼자 먹기에 아까워서 박신부님께 계란 프라이를 해 드렸습니다. 단순히 닭을 기르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닭에 관련된 신학적인 의미를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양의 교회는 십자가 위에 닭을 조각해 놓곤 합니다. 닭은 ‘회개’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 사도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모른다고 했고, 닭이 울자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닭은 ‘회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려고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려고 했다고 하셨습니다. 닭은 예수님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병아리의 목소리를 잘 아는 어미 닭처럼, 병아리를 품에 모으려는 어미 닭처럼 우리를 당신의 품에 안으려고 하십니다. 이제 성당에 오셔서 닭을 보면 맛있는 계란만 생각하지 마시고, 신학적인 의미도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7월의 첫째 주이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태어나신 ‘솔뫼’와 묻히신 ‘미리내’는 많은 사람들이 순례하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을 지내면서 성지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서양의 철학과 신학을 배우셨습니다. 당시 세계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김대건 신부님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달콤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파격적인 대우와 높은 자리를 약속하는 관리의 말은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유혹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잠시의 편안함과 육신의 자유보다는 영원한 삶과 그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참된 신앙을 선택하였고 그래서 오늘 우리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의 수호성인이 되셨고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존경하는 성인이 되셨으며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옛말에 “형 만한 아우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배 사제들의 삶을 대할 때 늘 부끄러움이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분들의 깊은 영성, 사목에 대한 열정, 복음 선포에 대한 투신, 교회에 대한 사랑을 저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 최초의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을 대할 때는 저는 그분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월요일, 동창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내년은 사제서품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주년 때는 멕시코를, 15주년 때는 러시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서품 20주년을 맞이하면서 해외여행을 가자는 이야기, 국내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캄보디아나 라오스에 가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집을 지어주자고 하였습니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과 파라구아이의 경기가 있던 날입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경기 결과를 인터넷으로 알아보았습니다. 말로는 일본이 이겨서 아시아 축구를 빛내주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일본이 승부차기로 졌다고 하니,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지난 1년간 논란이 많았던 세종시에 대한 국회 표결이 있었습니다. 원안과 수정안에 대한 찬반 논란이었다. 수정안은 반대가 많아서 결국 부결되었습니다. 총리와 대통령은 국회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청와대도 그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정안을 찬성했던 분들의 마음은 약간 다른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순교자들, 김대건 신부님은 마음과 행동이 늘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신앙은 나의 삶은 어떠한가? 돌아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일날 성당에 못나올 일이 많아지고
바쁜 사회의 일로 기도 시간은 늘 뒤로 미루어지고
성당에 가도 겨우 시간 맞추기가 바쁘고 10-20분 늦기가 일수고
신부님의 강론 시간에는 주보를 보거나, 자거나, 딴 생각하고
신부님의 강복이 있기도 전에 무엇이 그리 바쁜지 일어나야 되고
용하다는 점쟁이, 철학관, 무슨 도령이라는 곳에 가서 자신의 앞날을 알아보고 싶고 실제로 가서 복채도 내고
교회에서 하는 일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뒤로 빠지고
양심을 속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도 편안하고 쉬운 길보다는 어렵고 힘든 길 그러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은 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줍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그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키워주고 그러한 끈기는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희망을 낳습니다. 또한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온 신앙을 우리들도 잘 보존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2

  • 2010년 7월 4일 오전 7:49

    아멘!

  • 2010년 7월 5일 오후 12:21

    천주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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