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 목요일

2008. 5. 22. 오후 6: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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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어릴 때, 이사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제 기억에도 8번은 이사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이삿짐센터에서 대부분의 이삿짐을 정리해주고 새로 옮기는 곳까지 짐을 날라다 주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가다보면 가지고 가야하는 것들이 있고, 버리고 가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능한 것들을 다 가지고 가고 싶어 하시고, 아버지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신경을 거의 쓰지 않으셨습니다. 보통은 다 정리가 된 저녁 무렵에 오셨으니까요. 하긴 요즘은 이사 갈 때, 노인들께서 제일 먼저 이삿짐센터 차량 옆 좌석에 앉는다고 하더군요. 놓고 갈까봐 그런다나요. 한번 이사 갈 때 마다 많은 것들을 놓고 갑니다. 제일 크고 옮기기 힘든 것은 자개장이었습니다. 몇 번 옮기는 과정에서 흠집도 나고, 그래서 나중에는 버렸지만 가장 오랜 동안 함께 했던 이삿짐이었습니다.

사제가 되어서 6번 정도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사를 할 때 마다 짐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결심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짐은 가방 2개 정도만 가지고 다니자. 아직은 그 결심을 지키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벌써 이곳에서 조금씩 짐들이 늘어나니까요. 짐이 많을수록 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훌훌 털어버리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그렇게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커다란 짐은 책들이었습니다. 한번 읽고 다시 읽지 않는 책들을 참 오랜 동안 가지고 다녔습니다. 적성에 있을 때 본당에 책장을 만들고 그곳에 다 주고 오니 마음이 편하더군요. 새로운 곳에 가서는 새로 읽고 싶은 책들을 사고, 나중에 다 주고 오면, 사실 신부가 가지고 다닐 것은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감명 깊게 읽은 글이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배는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선장은 결정을 합니다. 배 안에 있는 무거운 짐들을 배 밖으로 버립니다. 더러는 아깝기도 하고, 더러는 소중하기도 하지만, 배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배를 가볍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욕심을 내서 자신의 물건을 배 밖으로 버리지 못하면 배는 험한 폭풍우 앞에 가라앉을지도 모릅니다. 도마뱀도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나운 동물이 꼬리를 물면 아낌없이 꼬리를 떼어 주고, 도망을 칩니다. 그래야 목숨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은 때로, 욕심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소중한 인격과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십니다.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험한 파도와 맞서 싸우면서 때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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