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길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과 후보들의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홍보하는 모습을 봅니다. 모두가 나라를 위하고, 지역 주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하니, 꼼꼼히 살펴보고 국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금천구는 유권자가 200,0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절반가량이 투표할 거라고 하니, 나머지 절반은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서 말씀을 보면, 사도들이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열성적으로 증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할 하셨음을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주님의 부활을 전하였는지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하여서 무슨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사도들이 명예나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사도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사도들이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과 신앙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였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신학교에 학생들 면담이 있었습니다. 이제 곧 부제품을 앞둔 신학생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사제 생활하시면서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으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사제직을 앞두고 고뇌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이제 곧 다가올 사제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몇 달 지나면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 자유롭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면 직장에 매이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고, 앞날을 위해서 끊임없는 경쟁을 해야 하지만 사제 생활은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제 생활은 일을 하면서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보좌신부님은 2년, 본당 신부님은 5년 동안 한 본당에서 사목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계획하고,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서 싫든 좋든 결과를 볼 수 있고 그것이 저에게는 좋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사제 생활은 보람이 있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나 때문에 절망 중에 있던 사람이 희망을 찾는 것을 보았고, 나 때문에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찼던 사람이 용서와 화해를 하는 것을 보았으며, 죽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줄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 생활 중에 힘든 일은 왜 질문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힘든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신학생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 자신도 사제직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미국의 ‘Time'지는“ 20세기의 끝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 4개”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입니다. “역사상 위험이 최고조에 이른 시간에 자유수호의 역할을 부여받은 세대는 몇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책임을 피하지 않고 환영한다. 나의 동료인 미국인들이여, 조국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자신이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라”
두 번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연설입니다. “우리가 오로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이다.”세 번째는 처칠 영국총리의 연설입니다. “나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프랑스 땅에서건 대양에서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네 번째는 마틴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입니다. “내게는 예전 노예의 아들과 노예소유자의 아들이 형제처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꿈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도 위대한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죽으려는 자는 살고,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말도 하였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나의 소원은 통일, 두 번째 소원도 통일, 세 번째 소원도 통일’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많은 후보자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주길 원하면서 이야길 할 것입니다. 그 중에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연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연설과 위대한 연설은 차이가 있습니다. 위대한 연설은 케네디와 킹 목사의 암살에서 보듯이 위기와 고난 속에서 나왔고, 거기에 담긴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역경을 극복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비록 넘어지셨지만 다시 일어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임박해서도 하느님께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며, 죽으셨지만 죽음의 어둠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은 바로 그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그분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그리고 오늘 제 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자신들이 느낀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의 몸을 썩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 봄에 들과 산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나무들은 새순이 돋아 생명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봄이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시기를 지내면서 그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영광을 우리 마음 안에 벅찬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이웃에게 드러내고 증거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