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사순 제 5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말씀에서 우리 신앙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우리는 죽어서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에 따라 살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으로 살면 우리는 어둠과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사제관 보일러의 탱크가 터져서 보일러가 고장 났습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방이 점점 차가워지고 온도를 올려도 곧 점검이란 불이 들어와서 알아보니 물탱크가 터져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토요일이고, 늦은 시간이라 할 수 없이 3층 보좌신부님 방으로 내려와서 잤습니다. 다행히 보좌 신부님 방은 보일러가 작동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하던 방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보면서 잠시 나 자신을 생각했습니다.‘지금은 이렇게 건강하고, 젊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지만 언제인가 나의 몸도 차가워지고 다시는 따뜻해지지 않을 때가 오겠구나!’
다음날 보일러 회사에서 사람이 왔고, 물탱크를 교체했기 때문에 보일러는 다시 작동을 하였습니다. 하루 동안 차가워졌던 방은 보일러가 작동이 되었어도 따뜻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카메라의 건전지는 수명이 다되면 다시 충전하면 됩니다. 보일러도 고장 나면 이렇게 다시 수리를 하면 됩니다. 과학이 발달라고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고장 난 것들을 고치고, 재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컴퓨터의 경우 하드 디스크가 불에 탔어도 정밀한 작업을 통해서 그 안에 저장된 내용들을 거의 복원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죽은 생명의 경우는 다시 복원하거나, 수리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죽은 사람을, 무덤에 묻힌 사람을 다시 살릴 수는 없습니다. 혹 거의 죽에 임박한 사람을 살리는 경우는 있습니다. 의식이 없는 사람을 전기 충격이나, 인공호흡으로 다시 살리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죽었고 며칠 씩 시간이 지난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저도 거의 죽을 뻔 했는데 살아난 적도 있고, 기도를 통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체험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육체의 죽음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면서 온전히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셨고, 마귀의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마시면 다시 목마른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사순 제 5주일은 생명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려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에제케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죽었던 라자로를 다시 살려주십니다.
저는 며칠 전에 101살 어머니와 68살 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장애아 된 딸을 50년간 돌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오래 사신 것은 오직 불구가 된 딸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어머니의 삶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 어머니의 모습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거룩한 삶입니다. 그 어머니는 현실의 삶에서 참된 가치와 사랑을 잊고 사는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 주는 신앙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가면 우리는 죽어서 영원히 살고, 살아서도 영원한 삶을 이미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변에서 부활의 신앙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서 일생을 살기로 약속하는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해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행려자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본당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함께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은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부활의 삶을 몸으로 사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사는 분들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분들이고 세상의 것에 복종하는 분들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분들입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던 만해 한용운의 시를 들려드리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가 없는 까닭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