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체험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영성피정 강의 요약)

2009. 9. 17. 오전 7:47:34

글자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신비체험’에 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때로 감동적이고, 마음이 아프고, 놀라운 일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는 그런 일들을 알려주는 방송입니다. 보통사람들은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런 프로를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해서 예전 사람들의 지혜와 건축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로마의 콜로세움, 멕시코 치첸이트사의 마야 유적지, 중국 만리장성,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자연현상을 자세히 보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넘어서는 일들을 우리는 ‘신비’라고 말을 합니다.

신앙 안에서 ‘신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약성서는 신비라는 말을 ‘Mysterium'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려 주는 것이고,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해주고, 하느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기에 바로 ‘신비’라고 이야기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 안에서 신비라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고, 그래서 영원한 삶을 향해 나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신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한국교회도 초기에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도 역시 300년간 무수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는 것에 대해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바로 ‘순교’가 곧 ‘신비 체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순교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교회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103명은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서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바로 ‘신비체험’을 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300여 년간의 박해시기를 견뎌내었고, 드디어 교회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중의 하나였던 ‘로마’의 정식 국교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선교의 자유도 주어졌으며, 많은 교회들이 지하에서 나와 지상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순교로 신비체험을 할 일은 없어졌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생각한 신비체험은 바로 사막에 들어가 은수자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은수자들은 함께 모여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했고, 세상의 것들과는 떨어져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커다란 힘이 되고 있는 ‘수도원’의 시작입니다. 수도자들은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기에 그분들을 ‘신비체험’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은수자’들은 기도 중에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안토니오, 베르나르도, 데레사, 십자가의 성요한’과 같은 분들은 ‘신비체험’을 하였고, 또 그런 체험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신비체험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얀세니즘’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나치게 율법적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신비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계몽주의와 인문주의가 서구사회에 등장하면서 교회의 가르침에도 자유로운 사상이 들어왔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하느님 체험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교회는 좀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절제와 엄격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신비체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정적주의’입니다. 이는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사람은 아무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영화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배가 난파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길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정적주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의 시대입니다. 교통수단의 발전과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사상과 종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두되는 신비체험은 ‘뉴에이지 운동’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웰빙’이 우선시 되는 세상입니다. ‘타인을 위한 희생, 십자가, 웰 다잉’등과 같은 생각들은 점차 힘을 잃고 있으며, 현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생각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원화 된 시대에 ‘신비체험’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비체험을 한 사람들의 주장과 교회의 가르침이 상반될 경우에는 어떤 쪽을 따라야 할까요?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2000년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체험했던 신비체험을 신학과 교회의 전통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판단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신비체험’을 했다고 하면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비체험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진정한 ‘신비체험’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삶과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서를 자주 읽고, 의식성찰을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에 주어진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고,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 갈 수 있습니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아 주시고 활기찬 믿음을 주시어, 저희 안에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주님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댓글 1

  • 2009년 9월 17일 오전 11:50

    어떤 사람들이 ‘신비체험’을 했다고 하면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비체험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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