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본당에서는 2가지의 교리가 시작됩니다. ‘예비자 교리’와 ‘견진 교리’입니다. 새롭게 하느님을 찾아서 성당에 오신 분들께서 참된 신앙의 기쁨을 알아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당을 찾아 처음 오신 분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견진교리를 통해서는 지금까지의 신앙을 돌아보고,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십니다. ‘아기가 예쁘고, 똑똑하고, 잘 생겼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아이는 부모님의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신은 예쁘고, 똑똑하고,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랍니다. 자라면서 아이는 이제 조금씩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너는 왜 이렇게 주의가 산만하냐?, 밥 먹을 때는 다리를 떨지 마라!,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행동하느냐!’ 아이는 이제 예쁘고, 똑똑하고, 잘 생겼다는 생각보다는 주의가 산만하고, 밥 먹을 때는 다리를 떨고, 별 것 아닌 일에 울고, 부모님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교회 내에서의 의사소통’이라는 주제로 ‘주교회의 여성 위원회’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은 교회의 구성원들입니다. 과연 교회 내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있는지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사제의 입장에서 본 의사소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동창신부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동창신부 중에 한명이 ‘사랑, 평화, 희망이란 주제로 바자회와 음악회’를 준비하였습니다. 동창신부는 우리 본당에도 바자회와 음악회 티켓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본당 신자 분들과 함께 바자회와 음악회엘 갔습니다. ‘먹거리, 볼거리, 살거리’는 바자회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음악회는 유명한 가수들이 나오면 일단 성공적입니다.
저는 잘 보았기 때문에 동창 신부를 만나서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음악회 프로그램 중에서 30분 정도 혼자서 노래를 부른 만요 가수가 있었습니다. 동창신부는 제게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는지 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조금 지루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창신부는 ‘아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의견도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좋은 이야기만 해 줄 것을 그랬나!’ 잠시 어색했고, 그 뒤로 음악회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을 생각해도 동창신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적이 많았습니다. 본당신부로 있으면서 많은 행사를 하게 됩니다. 준비를 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행사를 마치면 평가를 하게 됩니다. 평가를 할 때, 많은 분들은 다 잘되었다고 말씀들을 하시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부족한 부분, 아쉬운 부분,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곤 합니다. 그럴 때 겉으로는 잘 듣고,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 이야기를 하셔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사회의 ‘화두’는 ‘의사소통’이었던 적이 많습니다. 예전에 ‘신문고’라는 제도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임금’에게 직접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는 제도였습니다. 최근에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일은 ‘촛불집회’였습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촛불집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광우병 소 파동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촛불집회’를 통해서 알리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에파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시대에 사용되었던 ‘아람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람어를 몇 번 사용하셨습니다. ‘탈리타 꿈, 엘로이 엘로이 라박 사박타니, 그리고 오늘 들었던 에파타’입니다. 에파타는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그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눈먼 이들은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먹은 이들의 귀를 열어주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환성을 터뜨리고, 다리저는 이들은 사슴처럼 뛰게 하시는 분’임을 믿게 되어야 합니다. 또한 신앙의 귀, 영적인 귀가 열려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